중소기업들이 개척해 온 내비게이션 시장이 대기업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아이나비' 내비게이션으로 유명한 업계 1위인 팅크웨어유비벨록스에 인수되면서 이런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팅크웨어 주식 20%를 사들여 1대 주주가 된 유비벨록스는 스마트카드와 스마트폰 솔루션 등의 사업을 운영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지분 5.65%)가 2대 주주다.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은 중소기업인 팅크웨어와 파인디지털이 2000년대 초반 차량 앞유리에 붙이는 거치형 내비게이션(PND)을 선보이며 시장을 만들어왔다. 현재는 시장규모가 6000억원대로 커졌다. 내비게이션 정보제공 사이트 '네비가'에 따르면 팅크웨어는 지난 한 해 88만대(51%)를, 파인디지털은 35만대(20%)를 각각 판매했다. 이들 기업의 뒤를 이어 대기업 브랜드인 만도마이스터(7%), SK마케팅앤컴퍼니(6%), 서울통신기술(4%), 웅진홀딩스(3%) 등이 있다.

스마트폰 보급 확산으로 어려움에 처한 내비게이션 시장에 현대차·삼성(서울통신기술)·SK 등 대기업이 잇따라 뛰어든 것은 "스마트카(지능형 자동차), 위치기반서비스를 활용한 신개념 서비스 제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이미 내비게이션 분야에서 다양한 영역을 확대해왔다. 현대엠엔소프트(현대차 지분 31.84%)는 '지니'로 알려진 내비게이션 지도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매립형 내비게이션을 생산해 현대·기아차의 중대형급 신차에 장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팅크웨어 인수로 현대차가 소프트웨어(현대엠엔소프트)-매립형(모비스)-외장형(팅크웨어) 내비게이션 시장에 모두 진출했다고 보고 있다. 만도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마이스터도 '만도마이스터' 브랜드로 내비게이션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만도는 정몽구 회장과 사촌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2대 주주(7.54%)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45.8%)과 삼성전자(35.55%)가 대주주로 있는 서울통신기술은 지난 5월 기존 '엠피온' 브랜드 대신 '삼성'이라는 이름을 단 첫 내비게이션 출시 행사를 열었다. 지난달에는 매립 전용 내비게이션 모델을 공개했다. 서울정보통신기술이 내비게이션 사업을 강화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스마트카 시대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자동차와 IT가 결합되는 스마트카 시대가 본격화되면 내비게이션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SK텔레콤이 각각 50%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SK마케팅앤컴퍼니도 2009년 '엔나비'를 출시하면서 내비게이션 단말기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올 초엔 계열사인 SK주유소 등에 설치된 무선랜(와이파이)존을 통해 자동으로 지도 등이 업데이트되는 통신형 '엔나비' 신제품을 선보였다.

이런 대기업 움직임에 중소업체 사장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파인디지털 등 중소 내비게이션 업체는 "현대차와 같은 완성차업체까지 뛰어들어 내비게이션을 제조·판매하면 우리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지난 5월 내비게이션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기업에 납품하는 한 업체가 막판에 신청의사를 철회하는 등의 난항을 겪으면서 결국 적합업종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2004년부터 내비게이션 시장에 뛰어든 A사장(48)은 "국내 시장은 점점 힘들어져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