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디자인하는 남자

조선일보
  • 김미리 기자
    입력 2011.12.09 03:09 | 수정 2011.12.09 08:03

    LED·레이저 활용하는 발데마이어, 세계 톱 디자이너가 앞다퉈 찾아

    모리츠 발데마이어
    내로라하는 스타 디자이너의 작품 뒤에도 종종 숨은 조력자(助力者)가 있다. 최신 기술을 접목한 작품이라면 기술을 구현해주는 엔지니어가 필요하다.

    스타 디자이너들의 첨단 기술 조력자로 활동하다 특출한 능력을 인정받아 세계 디자인계에서 급부상한 인물이 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모리츠 발데마이어(Waldemeyer·37)다. 조명을 활용한 기술 작업으로 디자인, 건축, 패션, 시각 미술을 넘나든다. 그런 그를 BBC는 '세계 톱 디자이너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발명가'라 칭했다. 실제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설계자인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 디자이너 필립 스탁·론 아라드 등 현재 그 분야의 정상에 있는 스타들이 그와 협업해 작품을 만들었다.

    이 떠오르는 스타 디자이너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이스카이 아트'(대표 김승민)의 기획으로 9일부터 내년 초까지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미디어 설치물을 전시하게 된 게 계기다.

    "저요? 각 분야의 최고에게 '첨단 디자인 레시피'를 제공하는 사람요?" 지난 5일 서울 가회동의 조선일보 한옥 복합문화공간 '다사헌(多士軒)'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무리 형태가 특이해도 그냥 의자, 조명만으로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없는 시대예요. 첨단 기술을 집어넣어 디자인의 혁신을 이끌어 내는 게 제 역할이죠."

    패션 브랜드‘펜디’와 협업한 레이저 기타. 기타 몸통 안에 레이저 장치를 심어 기타를 치면 레이저가 뿜어져 나온다. 이 레이저를 특수 스크린에 대고 쏘면 스크린이 감지해 영상이 흐른다. 음량과 리듬에 따라 영상이 변한다(위).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전시하는 영상 작품‘타임스퀘어 백야’. 특수 플라스틱판으로 제작된 길이 20m의 설치물. 대형 프로젝션에서 빛을 쏘면 플라스틱판 위로 만화경처럼 기하학적인 모양의 그래픽 동영상이 펼쳐진다. 1층에 설치한 특수 카메라 앞에 관람객이 서면 카메라가 옷 색깔을 인식해 동영상 색깔이 바뀐다(가운데). 자전거 작품‘조이 라이더’. 자전거 바퀴에 LED를 설치해 페달을 밟으면 웃는 얼굴이 나타난다. /산드로 아라우호·이스카이 아트 제공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공학을 전공한 그는 필립스디자인연구소에서 일하다 2004년 론 아라드와 처음 만나 크리스털 샹들리에 '롤리타'를 만들었다. 크리스털마다 LED를 장착해 특정 번호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내용이 뜨게 한 조명이었다. 이후 독립해 자하 하디드와 함께 미래형 주방 'Z 아일랜드', 디자이너 이브 베하와 크리스털 조명 '보야지' 등을 합작했다. 하지만 대중은 이 유명 작품들을 자하 하디드나 이브 베하의 창작물로 알고 있다. "결국 그들의 유명세가 제 디딤돌이 됐으니 결과적으로 '공평한 거래'였어요."(웃음)

    발데마이어의 기술은 패션에서 더욱 빛난다. 실험적 패션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후세인 살라얀의 '혁신' 중 상당수가 알고 보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비디오 드레스'가 대표 작품. 얇은 천 아래 1만5000개의 작은 LED 조명이 들어가 있어 전원을 켜면 옷 표면의 영상이 계속 바뀐다. 장난감 레이싱카에 들어가는 특수 배터리가 옷 안에 들어있다. U2의 보노, 리한나, 테이크 댓(Take That) 같은 유명 가수들이 공연할 때 입은 레이저 재킷도 디자인했다. "패션과 조명, 건축과 기술 등 서로 다른 영역의 퓨전과 협업에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패션 디자이너 후세인 살라얀과 함께 만든‘비디오드레스’. 살라얀이 형태를 디자인하고 발데마이어가 조명 장식을 맡았다. 얇은 천 아래 작은 LED 조명 1만 5000개가 박혀 있고, 특수 배터리를 장착해 전원을 껐다 켤 수 있다. 전원을 켜면 LED 회로판에 입력된 프로그램이 작동하면서 옷 표면에 영상이 펼쳐진다. /산드로 아라우호·이스카이 아트 제공
    통일 전 동독의 할레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권력에 의해) 통제되던 느낌이 너무 두려웠다"고 했다. 그 반작용일까, 작품은 유쾌하고 따뜻하다. 아예 작품 '조이 라이더'는 자전거 바퀴에 LED 조명을 설치해 페달을 밟으면 웃는 얼굴이 나타난다.

    두 가지 이유에서 한국에 오고 싶었다고 했다. 한때의 독일처럼 분단된 나라, 그리고 IT 강국.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땠을까. "택시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다니 신기했어요." 그는 "조만간 이런 한국의 첨단 기술이 예술 작업으로도 승화됐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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