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7)가 한창인 남아프리카공화국 해변 도시 더반. 바닷가를 따라 전 세계에서 몰려든 환경단체들의 시위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8일 개막해 오는 9일 폐막하는 이번 총회는 교토의정서 이행 종료를 앞두고 열리는 사실상 마지막 회의지만, '포스트 교토' 체제는 말 그대로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시위자들은 물론 각국 대표들은 "이번에도 '포스트 교토(Post -Kyoto)' 체제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 지구 온난화의 마지막 방어선인 교토의정서는 아프리카 검은 땅에 영원히 묻혀버리게 될 것"이라면서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선진국이 의무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한 교토 의정서의 1차 이행기간은 내년에 끝난다.
◇EU, 중국을 향한 초강수
이번 총회의 최대 쟁점은 교토 의정서의 연장 여부다. 총회에서 조안나 판데라(Pandera) EU 대표단장의 목소리는 격앙됐다. 그는 "EU가 기후변화에 기울인 노력이 당연하게만 여겨져 왔다"면서 중국·인도 등 주요 배출국들이 교토 의정서 체제로 들어올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유로존 붕괴'를 우려할 정도로 경제가 위기를 맞은 EU는 유럽 국가만 의무 감축에 나서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EU는 2020년 이후에는 모든 주요 배출국이 감축에 참여하는 새로운 협상 계획을 도출해야 교토 의정서를 연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국 대표단의 쑤웨이(蘇偉) 부단장은 "연간 배출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총 배출량(산업혁명부터 지금까지)이 더 중요하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선진국이 계속해서 의무 감축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다음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미국과 인도 등도 EU 안에 반대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중국이 아닌 유럽을 지지
그동안 기후변화회의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국인 선진국과 의무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의 대립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이번 총회 양상은 다르다. 아프리카의 주요 개도국들은 이미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보다 EU를 지지한다. 동아프리카에 가뭄이 계속되는 등 지구촌 기후변화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총회가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이콥 주마 대통령은 "지구 온난화로 아프리카의 피해 수준은 이미 심각하다"면서 "이번 더반 회의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마 대통령은 "지난 칸쿤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에서 합의한 녹색기후기금도 서둘러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총회에서 개도국들이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연간 1000만달러의 녹색기후기금을 조성키로 했지만, 유럽·일본 등이 경제 위기에 빠지면서 기금 조성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에 열린 회의에서 시대에 남을 의정서를 이끌어냈다는 상징성에 불구하고 "지난 3월 대지진으로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중단돼 내년까지 약속한 감축 목표도 지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중고 맞은 '그린 경제'
이번 총회에선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에 한국도 포함돼야 한다는 압력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전망치(BAU)보다 3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선제적으로 제안해 국제 여론을 달래왔다. 또 경제성장과 환경을 모두 확보하는 '녹색 성장'이라는 모델을 제시해 유럽과 개도국의 지지도 받았다. 문제는 녹색성장 모델이 작동하기에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녹색 투자 버블 논란, 교토 협약 종료 등 삼중고를 넘어야 한다. 특히 교토 협약이 종료되면 2005년부터 매년 2배씩 성장해 온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도 일시에 축소될 수 있다. 최근 태양광 산업이 갑자기 어려워진 것도 경제 위기를 맞은 유럽 각국이 태양광 관련 보조금을 줄였기 때문이다. 한승수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의장은 "그래도 각국의 대립각을 풀 수 있는 해법이 환경과 성장을 모두 담보하는 녹색 성장 모델"이라면서 "GGGI는 녹색 성장 모델을 '포스트 교토 체제'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수석대표로 총회에 참가 중인 유영숙 환경부 장관도 7일 열리는 고위급 회의에서 각국이 '지금 당장'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유 장관은 "각국이 서로 입장을 조금씩 양보하고 합의를 하는 데 한국이 적극적인 가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토 의정서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돼 2005년 2월 발효됐다. 이 협약에 따라 유럽 각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2012년까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평균 5.2% 이상 감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