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VIEW] 조급했던 한국 금융, 뼈아픈 대가 10兆원

조선일보
  • 김홍수 기자
    입력 2011.11.19 03:07

    다 챙기고 떠나는 론스타, 그 교훈은
    론스타 8년만에 5兆 버는 등 외국자본, 한국서 10兆 챙겨
    "아무리 모르고 급했어도 은행을 서투르게 내주다니… 그것도 투기 자본에…"

    18일 금융위원회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에 주식 강제 매각 명령을 내림으로써 론스타가 8년 만에 5조원을 벌고 한국을 떠날 수 있게 됐다. 주식 강제 매각 명령은 미국계 사모펀드(소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펀드)인 론스타가 주가 조작 혐의로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상실했으므로 주식을 팔고 떠나라는 제재 조치다. 하지만 론스타는 6개월 안에만 주식을 팔고 나가면 되고, 하나금융(하나은행의 모회사)이 그 주식을 웃돈 붙여 사려고 하고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론스타에 불리할 건 없다.

    론스타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한국 금융 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남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부처 전 장관 A씨는 "아무리 급하더라도 국익과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길게 내다보고 대안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교훈을 줬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펀드가 제일·한미·외환은행 3개 은행과 극동건설, 파이낸스센터, 스타타워 등 기업과 빌딩에 투자해 얻은 수익이 총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간산업에 해당하는 은행을 단기 투자자 성격의 외국계 사모펀드에 넘기는 경우는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자 2009년 씨티그룹 같은 민간 투자은행에도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한시적으로 국유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프랑스 정부는 2008년 한국 STX그룹이 군함 생산 능력을 갖춘 생나자르 조선소를 인수하려 하자, 국가 전략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국민 세금을 투입, 경영권에 개입할 수 있는 지분(33%)을 확보했다.

    물론 과거를 현재의 잣대로 판단하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2003년 당시 외환은행은 카드 대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등으로 부실 채권이 급격히 불어나 부도 일보 직전이었다. 1조원이 넘는 달러를 들고 온 론스타는 당시 정책 당국자들에게 '가뭄 끝의 단비'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경제 관료들은 론스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외환은행 1대 주주인 독일 코메르츠방크가 증자에 반대하고, 다른 인수 희망자도 없는 상태에서 제2의 외환위기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전직 고위관료 B씨는 “당시 론스타가 그 돈으로 증시에서 외환은행 주식을 샀더라도 현재 기대되는 수익 정도는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계산해 보면 약 4조50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낼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당시 외환은행 2·3대 주주였던 수출입은행이나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증자를 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었고, 산업은행이나 국민연금을 동원하거나 외환위기 때처럼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카드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당시 정책 당국자들은 정치권 설득이 필요한 기존 대주주 증자나 공적자금 대신 손쉬운 길을 택했다.

    한때 외국 자본에 매각하려 했던 하이닉스가 독자 생존해 세계 2대 반도체 회사로 거듭난 일은 해외 매각이 금과옥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또 하나 반성해야 할 점은 정책 당국자들이 법과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엄청난 후유증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정교하지 못한 절차로 외환은행 매각을 결정하는 바람에 첫 단추를 잘못 끼웠고, 그 결과 8년 동안 ‘먹튀 논란’에 휘말렸다”고 말했다. 론스타 ‘먹튀’ 논란은 한국이 외국 자본에 비우호적이라는 인상을 주며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또 ‘변양호(외환은행 매각을 결정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신드롬’으로 상징되는, 관료들의 몸 사리기 병폐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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