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넘게 보험설계사로 일해 오던 박민식(37)씨는 올해 3월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체인 본사의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알고 지내던 고향 친구가 회사를 차리곤 "도와 달라"며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절친한 친구 부탁인 데다, 근무조건과 연봉까지 원래 자리보다 유리하게 제시받은 박씨는 낯선 업종에 도전하자는 결단을 비교적 쉽게 내렸다.

박씨처럼 지인의 추천이나 소개로 일자리를 얻는 사람들이 전체 국내 취업자의 60%에 육박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영철 연구위원은 14일 '구직에서의 인적 네트워크 의존도 추정'이라는 분석보고서에서 "한국노동패널의 6~10차 조사(2003∼2007년 자료)를 분석해 보니 총 6165명의 취업자 중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일자리를 구한 경우가 56.4%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취업자들이 가장 많이 의존한 인적 네트워크는 친구나 친지(37.0%)였고, 취업을 원하는 회사에 근무하는 지인(7.8%)이나 업무관계로 알게 된 지인(7.9%)이 취업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2.2%), 교사나 교수(1.6%)가 취업에 도움을 주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인맥 이외에 취업의 매개체로는 인터넷(17.7%)과 광고(11.7%)의 비중이 높았다. 공공이나 사설 직업안내소를 통해 직장을 잡은 사람의 비중은 각각 1.0%, 2.6%에 머물렀다.

이번 조사 결과 전체 취업자 가운데 첫 직장을 잡은 사람은 39.9%, 경력직은 60.1%가 '인맥'을 이용해 취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직이 자리를 구할 때 아는 사람들을 더 많이 활용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취업자들의 이 같은 인맥 의존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SSP)의 자료에 따르면 비교 대상 29개국의 인맥 의존도는 평균 45.6%였다. 취업 시 인맥에 의존하는 정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증가와 반비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가의 GDP가 높아질수록, 안면에만 의존해 취직을 하기가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KDI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고용을 위한 사회·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은 "구직 과정에서 인적 네트워크 의존도가 낮은 선진국일수록 고용을 위한 사회적인 인프라가 충실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GDP 대비 공공고용서비스(PES) 서비스 지출 수준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0.16%인 반면 한국은 0.02%다. 한국의 공공 고용인프라가 선진국 평균의 8분의 1 수준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공공 고용서비스에 종사하는 직원도 OECD는 평균 1만명당 5.4명인 반면, 한국은 0.6명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