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푸르덴셜생명 21층 사무실.
"국내외 통계와 사례가 충분하지 않네요. 위험관리 요소가 확실한지 철저하게 점검해서 보완해 주세요."
조의주 재무담당 전무(CF0·48)는 상품개발팀이 6개월 동안 준비한 '작품'에 대해 또 '수정'을 지시했다. 벌써 여섯 번째다.
조 전무의 보완 지시는 보험상품을 설계할 때는 통계 수치 밖의 위험요소까지 파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품 개발 과정에서 최소 40~50명의 지인으로부터 조언을 듣고 연령대와 직업별로 의견을 분석한 뒤 상품 설계 때 이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보험상품 전문가로서 조 전무가 이름을 알리는 계기는 그녀가 1993년에 첫선을 보인 '여명(餘命)급부특약'이었다.
종신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불치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치료비용 등으로 미리 사망보험금을 받아 쓸 수 있게 만든 특약이다.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며 종신보험의 새 영역을 개척한 상품으로 다른 보험사들이 모두 뒤따라왔다. 장례식 비용으로 사망보험금을 쓸 수 있는 '사후정리특약' 상품도 첫선을 보였고, 변액보험의 시초인 변액종신보험도 출시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지금도 "조 전무가 낸 상품들이 종신보험상품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조 전무는 '여성 보험계리사 1호'로 보험업계에 과거부터 화제가 됐었다. 보험계리사란 보험사가 담보하는 각종 위험을 평가하고 적정 보험료를 산출해 내는 등 보험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일을 하는 직종으로 과거에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꼽혔었다. 그녀는 "남성 위주의 보험업계에서 인정받고 싶어 도전했다"고 말했다.
1990년 푸르덴셜생명에 입사한 뒤 21년째 한우물만 파온 조 전무를 스카우트하려는 보험회사들이 많았다. 조 전무는 "지금까지 20~30곳의 보험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뿌리쳤다"며 "우리 회사가 보험업계의 모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푸르덴셜생명은 재무건전성이 좋고, 불완전 판매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1대1 상담 판매만 고집하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보험사와 차별화돼 있다.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위험 기준 자기자본 지급 여력비율의 경우 푸르덴셜생명은 793.4%에 달한다. 이는 보험사가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빼고, 부실 위험에 대비해 따로 적립하는 자본금 비율이다. 금융 당국에서는 110%만 돼도 안전한 회사로 분류하는데 푸르덴셜생명은 이보다 약 8배나 많은 비상금을 적립해두었다.
보험사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불완전 판매 부문에서도 푸르덴셜은 남다른 실적을 갖고 있다. 생보업계 평균 불안전 판매율은 1.31%인 데 비해 푸르덴셜생명은 0.03%에 불과하다. 조 전무는 "고객의 수명보다 회사(보험사)의 수명이 훨씬 길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기업의 안정성과 윤리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회사에 여유자금이 많음에도 조 전무는 마케팅비용을 많이 아끼는 편이다. 이 때문에 회사 마케팅과 영업 임원들과 때론 마찰을 빚기도 한다.
조 전무는 "경쟁사들은 연 예산의 70~80%를 영업비용으로 쓰며 외형 확대에 주력하지만 우리는 마케팅·영업비용 비중이 예산의 40%를 넘겨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