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형공장과 오피스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선 서울 금천구 가산동 가산디지털단지 내 한 사무실. 새하얀 5단짜리 선반 50개가 30㎡ 남짓한 공간을 꽉 채웠고, 각 선반마다 선명한 초록색 식물이 수경재배로 자라고 있었다. 종류는 같지만, 한곳에선 막 싹이 돋았나 하면 다른 선반에선 벌써 푸릇푸릇한 잎이 솟아 있는 등 성장 단계가 저마다 달랐다.

식물재배실 옆엔 컴퓨터로 온도·습도를 모니터링하는 상황실이 딸려 있고, 벽엔 '식물을 제조하는 곳이 아니라, 식품을 제조하는 곳이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식물 공장인 ‘태연친환경농업기술’ 직원들이 아이스 플랜트(미나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잎사귀 끝에 이슬 같은 게 맺히는 작은 식물)를 재배하고 있다.

이곳은 조명과 배수장치 등을 활용해 실내에서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을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고, 1년 365일 내내 식물을 재배·수확하는 '식물공장'이다. 현재 한국엔 인성테크·카스트식물공장·아이팜 등 식물공장 6개가, 일본엔 50여개가 운영 중이다.

국내 식물공장은 대개 상추 등 엽채류만 재배하지만, 농업법인 태연친환경농업기술이 운영하는 이 식물공장은 기르는 작물도 특이하다.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이 원산지인 '아이스 플랜트(ice plant)'. 얼핏 보면 미나리와 비슷하지만, 잎과 줄기 부분에 작은 이슬 방울(나트륨 결정) 같은 것들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씹으면 아삭아삭하고, 소금처럼 짭조름한 맛이 난다.

태연의 김선일 경영지원실장은 "식물공장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은 식물을 찾다가 아이스 플랜트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HEFL조명(저발열에 빛을 균일하게 쬘 수 있도록 만든 식물재배 전용 조명) 등 투자비는 대략 1억2000만~1억8000만원대. 하지만 엽채류는 시장 가격이 낮은 품목이라 투자 대비 수익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아이스 플랜트는 100g당 1만1000원대로 비교적 높은 가격대인 데다, 맛과 식감이 좋아 고급 레스토랑 재료로 수요가 적지 않다. 지난달부터는 신라호텔에도 납품하고 있다. 아이스 플랜트는 엽채류 식물보다는 재배 조건이 까다롭지만, 전통 농경 방식과 비교하면 재배도 훨씬 수월하다. 무균복에 모자를 착용하고, 3단계 살균·소독을 거친 뒤 재배실에 들어가 보니 직원 2명이 테이블에 앉아 실처럼 가느다란 스포이트로 씨앗을 집어 배양판에 하나씩 심는 '파종' 작업을 하고 있었다.

파종이 끝나면 온도 섭씨 25~30도, 습도 100%를 맞춰주고 수시로 모니터링을 한다. 1년 내내 수확이 가능한 데다, 많은 인력도 필요없다. 태연의 직원은 6명뿐이었다.

김선일 실장은 "식물공장은 날씨·기후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균일한 품질, 균일한 가격으로 1년 내내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며 "식물공장이 활성화되면 기후에 따라 들썩거리는 농작물과 채소 가격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