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방2·주방·욕실… 왜 이걸 다 갖춘 아파트만 짓는 거죠?"

조선일보
  • 오윤희 기자
    입력 2011.09.29 03:12

    민현식 한예종 교수·건축가
    최근 1~2인 가구가 늘고 집을 사무실로 쓰는 사람도 많은데
    한국의 아파트 구조는 획일화
    예를 들어, 아파트 A동은 거실을 키우고 B동은 방 더 넣고, C동은 주방 없애고…
    선택 폭을 넓혀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최근 1인가구가 늘고 가족 구성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집을 사무실로 쓰는 재택종사자도 늘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의 주택 유형은 2LDK(식당·욕실이 딸린 방 2개 주택)다, 3LDK다 하는 획일적인 틀에 갇혀 있어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랫말에 나오는 '나만의 집'이라는 개념은 획일성 속에 갇혀 사라져 버렸습니다."

    건축가인 민현식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언젠가부터 우리들이 '잘 살기 위한 집'보다 '잘 팔기 위한 집'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달 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건축도시포럼'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우리의 집'과 관련해 "우리나라는 지금 주택에서 개성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표준화·획일화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요즘 공급되는 대다수 아파트는 4인가족에 맞춰 설계되지만, 현대 도시에선 4인가족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또 자녀의 조기유학이나 맞벌이 등으로 주민등록상으로는 4인가정이지만, 실제로 가족 구성원들이 같이 살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민 교수는 설명했다.

    한국종합예술학교 민현식 교수는 “우리나라 주택에서는 개성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여러 유형의 주택을 공급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그렇다면 변화한 시대상과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새로운 형식의 주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민 교수는 "주택 공급업자가 꼭 방과 거실·주방·욕실이 세트로 묶인 한 '세대' 전체를 공급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아파트 A동(棟)은 전부 거실, B동은 전부 사무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혼자 살아서 넓은 거실은 필요없지만 재택근무 때문에 사무공간은 넓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B동의 방 2개를 골라 자신의 '집'으로 쓸 수 있게 하는 식이다. 늘 외식을 해서 부엌이 필요없는 경우라면 욕실과 방만 골라쓸 수도 있다. 즉, 주거 공간을 유닛(구성단위)별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리나요? 현대 도시에서는 음식점, 세탁소 등 주거 기능을 웬만큼 다 갖추고 있어서 꼭 집에 부엌이나 세탁장을 갖춰야 할 필요는 없어요. 실제로 일본의 한 젊은 건축가는 이런 시도를 해서 호평을 받았죠."

    민 교수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건설업자는 어렵더라도 공공주택을 만드는 주체들은 지금 같은 천편일률적인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공급해 수요자들의 선택지를 넓혀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솟는 전세금 때문에 괴로워하는 서민들, 미분양이 쌓여 고민하는 건설업자, 빚에 허덕이는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을 생각하면 다소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주장일 수도 있다. 민 교수 본인도 "로맨티스트의 이상(理想)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농경사회 뿌리가 깊어서인지 한국인들은 집에 대한 소유욕, 집착이 상당히 강합니다. 그런 의식 자체를 한순간에 없앨 수는 없지요. 다만 '소유는 하되, 굳이 내가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임대해 준다'는 마인드로 바꾼다면 소유자가 다양한 형태의 집을 사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공급할 수 있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도시인들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다양한 형태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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