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해외건설 수주에 '빨간불'이 켜졌다. 세계 경제 위기가 증폭되는데다 국내 건설사의 수주 텃밭인 중동의 정세 불안으로 수주액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사들은 올 하반기에 기대를 걸었지만 최근 불어닥친 미국 발(發) 경제위기로 이 같은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올 상반기만 해도 하반기에는 수주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며 “하지만 최근 경제위기로 향후 전망은 더 악화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 올해 해외 수주 작년 절반 수준…정부·업계 목표치 수정
16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초부터 이날까지 국내건설사의 해외건설 수주액(계약 기준)은 총 288억7558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96억8232만 달러의 58% 수준에 그쳤다.
작년 초 정부까지 나서 총력전을 펼친 끝에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186억 달러)를 제외하더라도 총 수주액이 20여억 달러 줄어든 수치다. 이대로라면 올해 초 해외건설협회에서 목표로 제시한 800억달러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해외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상반기 계약 대상 공사의 협상이 다소 지연되면서 실적이 저조했지만, 연말이면 지난해 수준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715억7880만달러였다.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도 '하반기 국토부 추진과제'를 통해 올해 수주 목표액을 600억 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올 초 정부는 비공식적으로 올해 700억 달러 수주를 목표로 했다"며 "현재로서는 600억 달러 정도는 수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대형 프로젝트 계약 지연…경제 불확실성 증가는 악재
해외건설업계는 상반기까지만 해도 협상이 지연된 해외 대형 프로젝트의 계약이 이뤄지면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지 사정 등으로 아직 수주 계약이 이뤄진 곳은 드물다.
실례로 국내 대형건설사 2곳이 지난해 말 최저가 업체로 선정돼 계약을 앞두고 있던 11억 달러 규모의 베트남 정유 플랜트의 경우 8개월이 넘도록 정식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다. H건설의 쿠웨이트 도로 공사(21억 달러), S건설의 사우디아라비아 발전 플랜트(11억 달러) 프로젝트도 장기간 계약이 늦어지고 있다. 또 올 하반기 수주가 유력하다던 인도의 압연공장(약 3억 달러)과 폴리에틸렌 석유화학 플랜트(2억 달러) 등의 계약 소식도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수주 텃밭인 중동 지역에서 지난해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없는 데다 미국 경제위기 여파로 국제 유가의 변동폭이 커진 상황에서 예정 물량마저도 연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 때 배럴당 120달러 이상이었던 두바이유(油)가 지난주에는 100달러까지 떨어졌다”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 유가가 요동치게 되면 발주처들이 발주 시기를 저울질 하느라 발주를 미룰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잘 해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될 듯
물론 연말에 수주가 몰리는 해외건설업계 특성상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은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예전과 달리 올해는 건설사들이 중·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시장을 넓혔고 석유화학플랜트에 집중돼 있던 공사종류를 담수·발전플랜트 등으로 다양화했기 때문에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 커졌다는 전망도 있다.
실제로 올해 건설사들이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 신시장에서 수주한 공사는 총 20억7000만 달러로 작년(16억4000만 달러)보다 26% 가량 늘었다. 여기에 중소건설사들도 단순 도급에서 벗어나 토목과 플랜트 등으로 수주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경제위기가 더 확산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예정대로 발주가 진행된다면 지난해와 비슷한 실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