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희한한 역설

조선일보
  • 김정훈 기자
    입력 2011.07.04 03:13

    국민 1가구 세금 30만원씩 더 내고, 5대 대기업은 1000억 '의외의 이익'

    지난해 현대자동차는 임직원 5만6000명 중 1만여명에게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대 줬다. 모두 840억원 규모였다. 하지만 현대차는 내년에 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등록금을 절반 깎아 주자"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이 그대로 정책에 반영되면 내년에 현대차는 등록금 지원액 중 420억원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반값 등록금'으로 뜻하지 않은 이익을 볼 수 있는 회사는 현대자동차만이 아니다. 등록금이 절반으로 일괄 인하되면, 국내 5개 대기업은 약 1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지난 1일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이주호 교과부 장관과 '전국총학생회장단모임'소속 총학생회장들이 반값 등록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삼성전자는 연간 500억원을 등록금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LG전자는 지난해 모두 200억원 정도를 지원했고, 포스코는 400억원을 썼다. 젊은 직원이 많아 학자금 지원이 많지 않은 SK텔레콤을 포함한 이들 국내 매출 상위 5대 기업의 지난해 등록금 지원 규모만 1940억원에 달한다. 기업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등록금을 절반 깎아주면 이를 970억원으로 줄일 수 있다.

    '묻지마 반값 등록금'을 실행하기 위해 한 해 세금 5조원 정도를 들여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5대 대기업이 반값 등록금 재원의 2% 정도를 가져가는 셈이다. 반면 다른 부문에 들어갈 정부 예산을 삭감하지 않는다면 전국 1700만 가구는 1년에 세금 30만원씩을 더내야 한다.

    애초 '친(親)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반값 등록금 정책 논의가 자칫하면 서민의 지갑을 털어 대기업 금고로 넣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반값 등록금만이 아니다. 전·월세 상한제, 대부업체 대출금리 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등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인기 영합 정책이 도리어 서민의 발목을 잡는 '포퓰리즘의 역설(逆說)'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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