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포항 포스텍(포항공대)의 한 연구실. 자동차 운전 시뮬레이터에 앉아 핸들을 잡자 화면에 눈길이 펼쳐진다. 분명히 내가 핸들을 돌리는데 마치 누군가 내 손을 잡은 듯한 느낌이다. '내가 이렇게 운전을 잘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동차는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고 멋지게 코너를 돈다.

"잘못된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면 잘 돌아가지 않죠. 카레이서가 실제 눈길에서 핸들을 조작하는 것을 컴퓨터에 미리 입력해두고 그대로 따라 해야 핸들이 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2일 최승문 교수가 컴퓨터 화면에 나온 사물의 감촉을 전달해주는 햅틱 장치를 손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물이 딱딱하면 햅틱 장치가 힘을 많이 줘 손가락에 돌을 만지는 듯한 느낌이 난다.

포스텍 최승문 교수(40·컴퓨터공학과)가 개발한 운전 시뮬레이터는 이른바 '햅틱(Haptics)'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촉각(觸覺)의'란 뜻을 가진 영어 단어(haptic)에서 유래한 말로, 인간이 손으로 만지고 몸을 움직일 때 느끼는 감각을 기계장치로 모방해 사람에게 전달하는 기술이다. 화면의 버튼을 누르면 실제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힘이 느껴지는 햅틱폰이나, 돌발 상황 시 자동차 핸들을 잡은 손에 진동이 오는 것이 바로 햅틱 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최 교수가 신생 기술인 햅틱을 접한 것은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석사를 마치고 1998년 미 퍼듀대로 유학을 갔을 때다. "지도교수가 그 분야에서 미국 최초로 교수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전공은 로봇이었는데 처음 보는 햅틱 장치에 빠져들었죠."

신생 학문이다 보니 지도교수에만 의지할 수 없었다. 그전에 배운 로봇공학에 사람의 감각을 알기 위해 인지심리학까지 총동원해야 했다. 매일 밤 처음 보는 분야의 책과 씨름하는 날이 이어졌다. 폭설이 내린 어느 날, 밤늦게 집으로 가는 길에 차가 360도 돌아가는 아찔한 사고를 당했다.

"4~5초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카레이서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으로 느끼는 감각을 기록해 그대로 재생해 배울 수 있다면 수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 교수의 운전 시뮬레이터가 바로 그런 장치다. 초보 운전자는 시뮬레이터를 통해 눈길이나 빗길 등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카레이서의 운전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당시에도 비슷한 연구는 있었다. 이를테면 공장 조립라인의 동작을 로봇 팔을 잡고 그대로 따라가면서 배우는 식이다.

하지만 최 교수는 여기에 '간섭'이란 개념을 최초로 도입해 기술을 업그레이드 했다. 즉 카레이서가 하는 대로만 핸들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돌릴 때 핸들이 뻑뻑해지면서 저항하는 것도 느끼게 한 것이다. 실제로 몸을 움직일 때 방해를 받으면 주의력이 높아져 동작을 배우는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고 한다. 이를테면 타이거 우즈가 내 손을 잡고 스윙을 가르쳐주다가 자세가 틀리면 골프채를 정지시키는 식이다.

최 교수는 이 연구로 지난주 미국전기전자학회(IEEE)가 박사학위를 받은 지 10년 이내의 전 세계 햅틱 연구자 중 최고 과학자에게 주는 상(career award)을 받았다. 2009년 상이 제정되고 두 번째 수상자였다. 2008년엔 최 교수의 연구실이 5년간 약 12억원의 연구비를 받는 '국가지정연구실(NRL)'에 선정됐다. IT 분야에서 최연소(37세)로 NRL을 맡게 된 것. 최근엔 부교수 승진 1년 반 만에 정년을 보장받는 기록을 세웠다.

현재 최 교수 연구실에서는 수술이나 암 진단 시 감각을 손으로 배우는 의료용 햅틱장치도 개발하고 있다. 국내 전자·통신·자동차 업체와 사람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리모컨, 스크린에 뜬 사물의 감촉을 느끼는 휴대폰과 자동차의 핸들에 들어가는 햅틱 프로그램 등을 개발 중이다. 디스플레이 조립 라인에서 새로운 작업을 몸으로 익히게 하는 로봇팔도 만들었다.

최 교수는 학생들에게 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쳐다보지 마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것. 그는 "유학 당시 세상 누구도 모르는 연구를 하면 교수가 될 수 있을지, 취직은 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면 지금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라며 "아무리 황당해 보여도 스스로 재미있다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