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운영이 스러져가는 산업도 일으킨다

  • 장영재·KAIST 교수

  • 입력 : 2011.05.07 03:05

    장영재·KAIST 교수
    장영재·KAIST 교수
    뉴욕 5번가,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패션이다. 그런데 이들 도시에 MIT를 더한다면? 바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의 대명사이자 세계 패션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인 자라(Zara)다. 패스트 패션이란 현재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를 포착해 패스트 푸드처럼 신속하고 저렴하게 고객에게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패션 비즈니스 모델이다. 자라는 이런 패스트 패션을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다. 자라는 스페인에 첫 매장을 연 후 점차 유럽 패션의 본거지인 밀라노와 파리에 성공적으로 입성하더니, 지난 3월에는 세계 패션의 메카인 뉴욕 5번가의 빌딩을 미국 부동산 최대 매매가인 3억2000만달러에 매입하며 세계 패션계를 경악케 했다. 그렇다면 패스트패션의 대명사인 자라와 첨단 기술의 대명사인 MIT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 자라의 유통망과 매장 운영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반 패션 브랜드의 경우 한 시즌에 판매될 의류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전 기획돼 디자인·생산·유통을 거친 후 매장에 진열된다. 즉 매장에 진열된 상품은 6개월에서 1년 전 기획된 상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같이 하루가 다르게 패션 유행이 바뀌는 시대에 1년 전 기획된 상품은 이미 한물간 퇴물이 되기 일쑤다. 자라는 장기 기획 방식을 따르지 않고, 현재 유행을 신속히 포착해 불과 몇 주 안에 디자인·생산·매장 진열 과정을 완성하는 초스피드 공급 방식으로 운영된다. 또 다양한 유행 상품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반 패션 브랜드의 경우 시즌당 약 3000종의 상품을 선보이는 데 비해 자라는 무려 1만1000종류의 상품을 선보인다. 다품종 소량 생산 그리고 시장에 대응하는 신속한 생산은 상당한 비용이 요구되는 전략이다. 그런데 자라는 이런 생산 전략으로 저가의 상품을 생산해 낸다.

    일러스트=김현국 기자 kal9080@chosun.com
    일러스트=김현국 기자 kal9080@chosun.com
    자라, MIT와 알고리즘 개발해 활용

    비결이 무엇일까? 바로 미국 MIT의 연구에 있다. 자라는 MIT 연구팀과 함께 최대 매출을 창출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이를 상품 수요 예측과 매장별 적정 재고 산출, 그리고 상품별 가격 결정에 적용하고 있다. 전 세계 매장에서 본사로 시시각각 유입되는 판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학의 최적화 알고리즘을 이용해 어떤 시점에 어떤 상품이 어떤 매장에 진열되어야 하는지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수퍼 컴퓨터나 우주 왕복선의 운영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던 첨단 수학분석 방식이 패션업계에 적용돼 새롭고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첨단 산업은 우주항공·반도체·바이오 테크와 같은 첨단 상품을 만드는 산업을 의미한다. 이들 상품을 만들 때 수학과 과학의 첨단 기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상품을 만드는 데에서 더 나가 운영·경영에도 첨단 기법이 사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바로 운영의 과학이다. 그리고 이러한 첨단 기법을 통한 운영이 가능하게 된 연결 고리가 바로 데이터다. 언제 어디서 어떤 고객이 무엇을 구매하는지는 속속들이 매장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고 있다. 자라의 경우도 전 세계 판매망에서 이뤄지는 데이터가 본사 데이터망에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자라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첨단 수학적 기법을 응용해 첨단과 거리가 먼 패션 산업을 첨단 비즈니스로 재탄생시켰다.

    서울 명동의 ‘자라’ 매장에서 고객들이 옷을 고르고 있다. 자라는 MIT연구팀과 수학적 알고리즘을 개발해 이를 상품 수요 예측, 각 매장별 적정 재고 산출에 활용하고 있다. / 이태경 기자
    서울 명동의 ‘자라’ 매장에서 고객들이 옷을 고르고 있다. 자라는 MIT연구팀과 수학적 알고리즘을 개발해 이를 상품 수요 예측, 각 매장별 적정 재고 산출에 활용하고 있다. / 이태경 기자
    사양산업과 첨단 데이터 분석력이 만나면?

    이처럼 기존 사양 산업이나 첨단과 거리가 먼 비즈니스를 첨단 데이터 분석력을 바탕으로 재탄생시켜 성공한 예는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넷플릭스(Netflix)사의 경우 DVD 영화 대여란 사양 산업을 고객 데이터 분석을 통한 새로운 첨단 산업으로 재탄생시켜 미국 미디어 업계의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성장 무기는 고객 데이터를 통해 개개인의 영화 취향을 분석하는 영화 추천 알고리즘이다. 영화를 감성의 산업이라 하지만 이들은 수치화하기 힘든 고객의 취향을 분석해 DVD 대여 사업을 첨단 산업으로 일궈냈다. 전체 산업의 기조마저 바꿔놓은 셈이다.

    패션 브랜드 '자라'와 MIT와 만남

    일반 브랜드가 시즌 3000종 선보일때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1만1000종 내놔
    상품 수요 예측 등 최적화 모델 개발… 비용은 오히려 대량생산보다 적어

    신문·DVD 대여가 첨단 산업으로

    정보 전달·소비 과정 알고리즘 분석… 개개인에 맞춤 뉴스 서비스 제공
    고객마다 다른 영화 취향 알아내

    전통적인 신문들도 운영의 과학화를 통해 첨단 산업으로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미디어 업계는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독자들이 인터넷 포털과 스마트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자 종이 신문 판매는 급격한 하락 곡선을 그리게 됐다. 정보의 범용화로 인해 광고 매출마저도 추락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단순한 정보 전달 미디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 개개인에게 맞춤형 뉴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뉴스 제공 시스템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통계학·수학자들과 함께 첨단 데이터 분석 방식으로 정보의 전달과 확산에 관해 연구 중이다. 정보가 창출되고 소비되는 과정의 흐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효율적인 정보 전달과 새로운 첨단 정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UCLA의 통계학 교수인 마크 한센은 뉴욕타임스와 공동으로'프로젝트 케스케이드'란 새로운 정보 전달 방식을 연구 중이다. 이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상용화된 시대에 활자를 통한 정보 전달 이상의 것을 고민하던 뉴욕타임스가 시도한 다양한 방법 중 하나다. 또한 '프로젝트 케스케이드'는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해 다양한 정보를 생성하고 전달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정보의 흐름과 정보 전달자들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사이버상에서 이뤄지는 정보 생성의 투명성을 파악하는 노력이다. 고도의 통계와 수학적 알고리즘이 요구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아마존은 컴퓨터 공학 이용해 소비패턴 분석

    '뉴럴 네트워크', '머신 러닝', '패턴 인식'…. 모두 컴퓨터 공학 관련 용어다. 얼마 전 최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닷컴(Amazon.com)의 CEO 제프 배조스가 지난 4월 27일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단어들이기도 하다. 인터넷 쇼핑몰 CEO가 왜 이런 기술적인 단어들을 언급했을까?

    인터넷 쇼핑몰이라면 단순히 물건을 잔뜩 창고에 재어두고 인터넷으로 주문받은 물건을 배송해주는, 첨단 기술과는 무관한 업체로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아마존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터넷 쇼핑몰에 한해 이는 그리 틀린 정의는 아니다. 그러나 아마존닷컴을 단순히 물건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유통 회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마존닷컴은 일찍부터 소비자의 소비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교한 컴퓨터 공학의 첨단 알고리즘을 이용해 소비패턴을 분석하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기업이다. 이 기술을 응용해 소비자 맞춤 광고와 판매전략을 실행하는 명실상부한 첨단 테크놀로지 기업이다.

    제프 제조스는 이 편지에서 세계 어느 첨단 기업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데이터 분석 기술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바로 아마존의 힘임을 피력했다. 그리고 단순 유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첨단 IT기술의 프론티어인 클라우드 컴퓨터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란 내용을 주주들에게 알렸다. 아마존은 데이터 분석과 알고리즘으로 기업 운영을 첨단화해 세계 최대 일류 그룹으로 우뚝 선 것이다. 세계 유통의 일종의 게임 체인저인 것이다.

    이렇듯 데이터와 데이터 분석력을 갖추면 어떤 산업도 첨단 산업이 될 수 있다. 아직도 많은 국내 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고민할 때, 어떤 물건을 만들어 팔지에만 골몰한다. 정보화 시대에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가 첨단인지를 구분하는 잣대다. '어떻게 만드느냐'라는 소프트웨어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발상의 시작이 바로 데이터 분석이며, 이는 정보화 시대의 기업 경쟁력이기도 하다.

    '자라'에 적용되는 수학적 알고리즘

    각 매장 상품수·매출 관계 수치화… 어느 매장에 얼마 공급할지 결정

    전 세계 수백개 매장에 적절한 물량의 상품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것이 자라의 목적이다. 자라는 일주일에 두 번씩 상품을 각 매장에 공급하고 있다. 이때 어떤 상품을 얼마나 공급해야 하는지를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에는 각 매장의 매니저들이 과거 경험이나 감에 의존해 주문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실제 수요보다 더 많은 상품을 매장에 쌓아놓을 경우 남은 재고는 결국 시즌이 지난 다음 헐값에 팔아야 하고, 반대로 수요보다 제품이 적을 경우 고객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수많은 매장을 거느린 브랜드의 경우, 각 매장의 매출을 극대화하면 당연히 전체 브랜드 매출도 상승할 것 같다. 하지만 자라의 경우 이러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아래 그림은 자라 매장에 진열된 특정 상품의 수량과 매출의 상관관계다. 그림에서 제품이 어느 정도 진열돼 있지 않으면 그 상품의 매출은 미미함을 알 수 있다. 상품이 많이 놓이지 않아 소비자의 시선을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매장 진열 외에 특별한 상품 광고를 하지 않는 자라의 경우, 매장에 상품이 많지 않아 고객의 시선을 잡지 못하면 매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자라 매장에 가 보면 어느 특정 상품이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런 진열방식이 바로 그러한 노출 효과를 위한 것이다.

    [Weekly BIZ]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운영이 스러져가는 산업도 일으킨다
    일단 어느 정도 상품이 비치되면 상품 수와 매출은 비례한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매출은 증가하지 않는다. 아무리 상품이 많이 진열돼도 상품이 판매되는 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포화 지점이라 한다. 특정 상품의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 노출 효과가 발생하는 지점과 포화 효과가 나타나는 지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정 매장의 매출을 최대화하는 것이 반드시 전체 브랜드의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란 것도 이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매장에 최소한 10개 이상의 상품이 진열돼야 노출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이 상품의 포화 지점이 50개라 치자. 이 경우 본사에서 제품 100개를 전 세계 50개의 매장에 공급하려 할 경우 전체 매장에 2개씩 골고루 공급하는 것보다 2개의 매장만 골라 50개씩 공급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이 경우 상품을 공급받지 못한 48개의 매장은 이 상품을 통해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잃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신 2개의 매장이 이 상품의 매출을 극대화해 결국 자라 전체 매출을 최대화한다. 자라는 각 매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 그래프를 측정하고 수학의 최적화 알고리즘을 통해 어느 매장에 얼마만큼 상품을 공급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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