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한·EU FTA… 우리가 얻는 경제적 효과는] 고급 와인 15% 관세 바로 사라져… 수출車는 가격 경쟁력 생겨

조선일보
  • 류정 기자
    입력 2011.05.06 03:00

    독일 車·프랑스 와인·이태리 명품, 국내서 지금보다 더 싸게 살 수 있어
    농축수산물 분야는 개방으로 '타격'… 韓·EU FTA 비준이 미국 자극
    "韓·美 FTA까지 발효되면 한국이 유럽·美 연결하는 중심지 될 것"

    "출발은 늦었지만, 골인은 빨랐다."

    지난 4일 국회에서 비준된 '한·EU FTA'는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된다.

    사실 우리나라는 'FTA 지각생'이었다. 1995년 WTO 체제가 출범한 이후 각국은 일대일 협상인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무역장벽을 없애고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다자(多者) 협상에만 참여할 뿐 FTA에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FTA를 적극 추진했고 2009년에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EU와 FTA를 타결했다.

    EU 역시 한국과 FTA를 추진하는 데 있어 지각생이었다. 서방국가 중에는 2004년 캐나다가 먼저 우리에게 협상을 제안했고 미국도 우리와의 FTA를 서두르자 EU는 뒤늦게 2006년 협상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EU는 속전속결로 FTA를 마무리해 미국캐나다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FTA는 속도의 경제학인데, 관세가 낮아지거나 없어지는 유리한 가격조건으로 유럽이라는 거대 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상당히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와인, 독일 자동차 싸진다

    EU와 약속한 대로 오는 7월 1일 FTA가 발효되면, 세계 2위 규모의 유럽 시장이 활짝 열린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거의 모든 상품·서비스에 대한 관세가 5년 내에 철폐된다.

    먼저 소비자들은 유럽의 자동차, 명품, 고급 와인, 치즈, 돼지고기, 쇠고기 등 다양한 유럽산 상품을 지금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벤츠·아우디·BMW·폭스바겐 등 고급 승용차부터 유럽 사람들이 즐겨 타는 다양한 경차들이 더 저렴하게 수입된다. 1500㏄ 중대형 승용차는 3년 내에, 소형차는 5년 내에 8%의 관세가 사라진다.

    구찌·샤넬·불가리·페라가모 등 이탈리아·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의류, 화장품, 신발, 가방 등에 매기는 8~13%의 관세도 대부분 5년 내에 철폐된다.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산 고급 와인에 붙는 15%의 관세는 발효 즉시 사라지고 치즈에 부과되는 36%의 관세는 10~15년 내에 단계적으로 사라진다. 돼지고기와 쇠고기, 닭고기 등 농축산물에 붙는 20% 안팎의 관세도 10~15년 내 사라진다. 똑같은 조건이라면 지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와인과 치즈를 곁들인 유럽풍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가전제품 수출기업 수혜

    수출 기업 중에는 주로 자동차 부품, 자동차 완제품 등 자동차업종이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유럽에 수출하는 우리나라의 중대형 승용차는 3년 내, 소형 승용차는 5년 내에 10%의 관세가 사라져, 그만큼 싼 값에 수출할 수 있게 된다.

    현재 22%의 관세가 5년 내에 철폐되는 화물자동차 수출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베어링, 타이어, 고무벨트 등 자동차 부품도 즉시 또는 3년 내에 관세가 사라진다. 유럽에 고급 TV와 냉장고·에어컨 등을 수출하는 우리 가전업체들도 혜택을 보게 된다. 특히 14%에 달하는 TV 관세가 5년 내에 사라지면, 딱히 내놓을 만한 전자제품 브랜드가 많지 않은 유럽 시장에서 우리 제품의 인기가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제품 원산지가 한국임을 입증하려면 국내 생산 비중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반면 농축수산물 분야는 개방의 파고로 인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FTA 협상 때 우리 정부는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럽의 농축수산물 관세 철폐 기간을 10~20년으로 최대한 늦췄다. 쌀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미 FTA 비준도 속도 낼 듯

    한·EU FTA 비준으로 얻는 또 하나의 보너스는 미국이 한미 FTA 비준을 서두르게 된다는 점이다. 유럽 상품들이 한국 시장에 유리한 가격으로 먼저 진출할 경우, 경쟁국인 미국은 한국 시장을 유럽에 빼앗길까 봐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게리 로크 미국 상무장관이 방한해 "한·미 FTA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닌 국가 비전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한미 FTA 비준을 재촉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캐나다도 우리나라와의 무역 관련 협상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캐나다는 미국보다도 먼저 우리와 협상을 시작했지만 아직 협상을 타결짓지도 못한 상태다. 2009년 캐나다가 우리에게 쇠고기 수입을 요구하며 WTO에 제소한 뒤엔 이 분쟁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한·EU FTA가 발효되면 유럽산 쇠고기가 한국에 진출하기 수월해지기 때문에 캐나다는 우리나라와의 쇠고기 분쟁도 조속히 타결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최병일 교수는 "한·EU FTA는 경제보호주의라는 세계 경제의 위험요소가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이뤄낸 획기적인 쾌거"라며 "한미 FTA까지 발효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경제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FTA(Free Trade Agreement·자유무역협정)

    협정 체결국 사이에서 관세 철폐 등 무역 특혜를 서로 부여하는 협정이다. 체결국은 한·ef="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53" name=focus_link>칠레 FTA처럼 두 나라가 될 수도 있고, 한·EU FTA처럼 여러 나라가 될 수도 있다. 관세와 각종 무역 장벽은 10년 내에 철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협상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핫뉴스 BEST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