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네이터 2'에는 액체금속 로봇이 나온다. 로봇은 몸이 액체라 총을 맞아도 구멍이 금방 메워지고, 자유자재로 변신(變身)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이런 액체금속을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사고를 막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일본 도쿄전력도 한국과 일본에서 액체금속을 조달할 수 있는 곳을 알아 보고 있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능은 막고 열은 전달
서울대 황일순 교수(원자핵공학과)가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 연구소장에게 이메일을 통해 제안한 액체금속은 '필즈 메탈(field's metal)'이다. 이름은 '금속(metal)'이지만 특이하게도 섭씨 62도에서 액체로 변하며 1700도가 돼야 기체로 바뀐다. 성분을 보면 인듐(In)이 50% 정도이고, 비스무스(BI, 30%)와 주석(Sn, 20%)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황 교수는 "필드 메탈의 인듐은 방사성 요오드나 세슘, 중성자를 붙잡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속쓰릴 때 짜먹는 위장약처럼 핵연료봉을 감싸 밖으로 노출되지 않게 하는 셈이다.
액체금속은 다른 금속과 마찬가지로 열을 쉽게 전달한다. 현재 원자로 안은 핵연료봉이 공기 중에 노출돼 아주 뜨거운 상태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연료봉에 냉각수가 바로 닿으면 겉면이 갈라지고, 안에서 방사성 물질이 튀어나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원자로에 액체금속을 넣은 뒤 이어 냉각수를 공급하면 냉각수가 핵연료봉의 열을 받은 액체금속을 식힐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핵연료봉이 냉각수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열을 쉽게 식힐 수 있다.
이날 도쿄전력 연구소는 황 교수에게 보낸 메일에서 "한국에서 조달 가능한 액체금속의 양과 선적기간, 실제 원전에서 적용된 예 등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도쿄전력 연구소장은 '일본에서도 같은 액체금속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르노빌 사고 수습에도 쓰여
원전 사고에서 액체금속이 쓰인 것은 처음은 아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옛소련(현 우크라이나)은 2400t의 액체 납을 원자로에 넣었다. 일단 액체 납으로 원자로의 열을 식힌 다음 모래와 콘크리트를 부어 원자로를 밀봉했다. 옛소련의 핵잠수함들은 정상 작동 중인 원자로의 냉각제로 액체금속을 사용한 바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수습에 참여했던 우크라이나 과학자들 역시 액체금속 밀봉법을 일본에 제안했다. 지난 17일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은 액체 주석으로 연료봉을 밀봉, 냉각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우크라이나 전문가들의 제안은 일본 대사관을 통해 도쿄전력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은 "헬륨이나 아르곤 등의 압축가스와 함께 액체금속을 주입하면 쉽게 원자로 안으로 넣을 수 있다"며 "액체금속은 원자로를 냉각하고, 핵분열 물질의 전달을 막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닷물 오염 막을 방안도 시급
다른 전문가들도 방사성 물질 누출을 막을 다양한 방법을 제안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백원필 박사는 원자로 격납용기 바깥쪽에 냉각수를 넣는 '외벽냉각'을 제시했다. 백 박사는 "원자로 안에 물을 집어넣으면 언젠가는 뽑아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방사성 물질이 많이 나온다"며 "원자로를 밖에서 냉각시키면 여기서 물이 끓어 증기가 되고 나중에 새나가도 방사성 물질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포스텍 김무환 교수(기계공학과)는 "바다에서 검출된 방사성 물질은 주로 폐연료봉 저장 수조에서 흘러내린 물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며 "냉각수를 넣을 때 넘치지 않게 조심하고 흘러내린 냉각수는 따로 탱크에 모으고 필터로 방사성 물질을 거른 뒤 방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