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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세계 1등 中企군단의 대만 차이완(China+Taiwan) 시대 '물 만난 고기'

  • 김남인 기자

  • 입력 : 2011.03.05 03:11

    대만·중국·일본의 '황금 삼각'

    세계 3위 D램 반도체 업체인 일본 엘피다메모리가 지난달 25일 대만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일본기업 가운데 처음이다. 상장을 통해 조달한 120억엔을 대만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투입할 예정이다. 사카모토 유키오 엘피다 사장은 이날 상장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일본기업인 엘피다가) 홀로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만기업과 함께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지난달 엘피다는 세계 6위 대만 반도체 업체인 파워칩의 D램 반도체 사업 부문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7위인 프로모스 테크놀로지와도 경영 통합 교섭을 진행 중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한국 삼성전자에 밀린 업체 간의 '패자(敗者) 연합'이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중국을 등에 업고 약진하는 대만과, 여전히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일본의 '기업 연합'이란 측면에서 보면 또 다른 함수를 읽을 수 있다.

    마잉주 대만 총통은 최근 '두 개의 황금 삼각'이란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실리콘밸리-타이베이-상하이'. 중국을 등에 업고 미국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도쿄-타이베이-상하이'. 중국을 업고 일본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대만은 작년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FTA와 비슷) 체결을 지렛대로 10.82%라는 경이적 성장률을 기록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일본기업이 단독으로 중국에 진출하면 성공률이 60%, 대만과 손을 잡으면 10%포인트 이상 확률이 올라간다"는 대만 고위 당국자의 발언을 전했다.

    일본기업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캐논·소니·샤프·히타치·도시바 등 일본 전자기업들이 모두 대만기업을 인수하거나 제휴 관계를 맺거나 추진 중이다. 아사히맥주·다스킨·무인양품 등 식음료·의류업체도 대만기업과 맺은 제휴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반일(反日) 정서로 인해 중국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은 문화적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거리를 대만을 통해 좁히겠다는 것이다. 서울대만무역센터 장양홍 관장은 "대만은 중국과 언어·문화가 같고 관시(關係·인맥) 형성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조현준 교수는 "일본이 대만을 통해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 관세인하 효과를 볼 수 있는 데다 반일감정으로 인한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며 "대만 역시 일본에 대한 호감이 높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타이베이 도심에 위치한 '타이베이 금융센터(타이베이101)' 앞을 지나가고 있다. 대만은 작년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맺은 뒤 중국인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올해 대만에서는 중국 인 개인관광도 허용된다. / AFP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발행하는 잡지 '닛케이 톱리더'는 중국에 진출한 일본 경영진의 고민을 이렇게 전했다.

    "대만기업은 오너가 직접 중국에 살면서 사업을 지휘한다. 중국 인맥을 통해 현지의 최신 정보와 제휴선을 끌어모은 뒤 '이 분야에서 돈을 벌겠다'고 판단하면 압도적인 스피드로 투자를 단행해 일거에 시장을 장악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본에 있는 사장의 지시를 기다리는 시스템으론 대만기업을 당해낼 수 없다."

    일본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2009년 상하이에 진출할 때 손을 잡은 기업은 대만 식품·유통기업인 유니프레지던트이다. 일본 전자기업 소니가 2009년 저가격 액정TV로 중국시장을 공략했을 때 제조 공정을 위탁한 기업은 애플의 아이폰 제조회사로 유명한 폭스콘이었다. 세븐일레븐은 유니프레지던트와 손을 잡는 방식으로 대만기업의 중국 네트워크에 올라탔다. 소니는 중국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폭스콘을 택한 것이다.

    대만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 간의 '수평분업(水平分業)'이다. 수많은 중소·중견 가족기업이 대기업과 손을 잡고, 대기업은 다른 세계적 기업과 손을 잡아 거미줄과 같은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기덕 연구원은 "강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대만 중소기업들은 표준제품뿐 아니라 특별주문에도 유연하게 대응한다"며 "시간이 촉박해도 결코 'NO'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만의 이런 강점이 작년 중국과의 경제협력기본협정을 통해 다시 분출하고 있다. 작년 경제성장률 10.82%는 일본의 기술을 배워 미국시장에서 돈을 끌어모으던 '아시아 4룡(龍)' 시대로 되돌아간 수준이다. 대만 경제부 국제무역국에 따르면, 중국이 대만에 개방한 539개 품목의 중국 수출액은 138억4000만 달러. 이중 17%(23억5200만달러)가 대만기업이 중국시장에서 한·일 기업과 경합하는 영역이다.

    ◆독립된 중소기업

    대만 중소기업 수는 총 123만 개다. 전체 기업수의 98%, 고용의 76%(2009년 기준)를 차지한다. 이 중소기업들이 세분화·전문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만 경제의 '위기 대응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만에는 분야별로 수십 개의 중소업체들이 포진해 있다. 대기업은 이들로부터 필요한 부품을 언제든지 싼 가격에 받을 수 있다. PC와 PC관련 부품 생산에 참여하는 중소기업만도 6000개가 넘는다.

    대만 중소기업들의 분업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반도체 공정이다. 반도체는 설계·제조·패키징·테스트의 단계를 밟아 만들어진다. 대만에서는 이 네 분야를 서로 다른 업체들이 맡아 처리한다. 설계공정을 가리키는 팹리스(fabless·공장이 없다는 뜻) 업체 중 대표적인 업체가 미디어텍이다. 세계 최고 팹리스 업체 25개 중 6개가 미디어텍을 비롯한 대만 기업이다.

    대만의 중소기업은 특화된 능력으로 납품처를 여러 개 공유한다. 한국처럼 중소기업이 주로 대기업 한 곳의 하도급 업체에 머물지 않아 대기업-중소기업 간 수평적 관계가 가능하다. 대만에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서 분사하더라도 모기업의 지배에서 자유롭다. 예를 들어 미디어텍은 파운드리 업체인 UMC에서 1997년 분사했지만 UMC가 가진 미디어텍 지분은 1.5%에 불과하다.

    ◆가족기업의 힘

    이들 중소기업은 대부분 가족경영으로 운영된다. 송창의 한국무역협회 지역연구실장은 "정부의 지원으로 창업절차가 매우 간소한 데다, '국가'보다 '가족' 개념이 강한 대만에서 가족기업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대만식 가족경영은 오너(가부장)의 강한 리더십, 신속한 의사결정,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유연함으로 요약된다.

    건국대 조현준 교수는 "대만 중소기업 오너들은 대만의 회사를 가족들에 맡겨두고 중국에 거의 살다시피 한다"며 "아이들은 중국 학교에 입학시키고 자신은 인맥을 만들러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대만 내에서는 '중소기업들이 (중국으로) 뿌리째 옮겨가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중국에 진출한 일본·한국 업체들에서는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한탄이 나온다는 것이다.

    가족경영이 워낙 강하다 보니 기업 내에서도 가족주의 정서가 팽배하다. 이 때문에 임금 상승압력이 낮고 노사분규도 거의 없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가 흔들리던 2010년 대만 대졸자의 평균 초봉이 2008년 수준에 머무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송창의 실장은 "한국은 가족기업이라도 위기 때는 널리 인재를 모집해 경영을 개방하지만, 대만은 그럴 때일수록 오너를 중심으로 가족끼리 똘똘 뭉친다"고 했다.

    ◆대기업의 약진

    현재 대만 경제의 가장 큰 경쟁력은 IT산업이다. HTC는 작년 스마트폰 출하량과 매출액이 2009년보다 배로 뛰어 약 2400만대·2800억 대만달러(약 11조원)를 기록했다. 영업 이익률은 15.4%로 삼성전자(10.4%)보다 높았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체 TSMC의 작년 4분기 순이익은 14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 세계 3위 PC제조업체 에이서는 미국 델과의 시장 점유율 차이가 0.4%에 불과하다. 이 업체 역시 작년 4분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25% 뛰었다.

    전 세계 IT기업 매출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다. 대만은 이미 전 세계 노트북ㆍ넷북(미니 노트북)·마더보드(주기판)·케이블모뎀 생산의 80%(2009년·대만 공업연구원) 이상을 차지하고, LCD모니터 점유율도 70%에 달한다. 전체 수출에서 IT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8%일 정도로 대만 경제의 의존도도 높다. 대만 IT기업들은 미국·일본 등 세계의 OEM 수요를 가장 활발하게 소화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체상표생산(OBM)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에이서·아수스 같은 회사들은 최근 10년 사이 자체 브랜드로 세계 100대 IT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차이완'의 외연 확장

    대만의 539개 품목이 무관세로 중국 시장에 진입하는 시기는 올해부터다. 본격적인 차이완(China+Taiwan) 시대가 열리면서, 대만 정부는 연간 138억 달러(약 15조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2년 전만 해도 대만은 '일변일국(대만과 중국은 각각 독립된 국가)'을 주장하는 천수이볜 전 총통 아래, 코앞에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두고도 제대로 뛰지 못했다.

    대만은 자유무역의 외연을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을 체결한 직후 싱가포르와 FTA 협상을 추진하는 것이 한 예다. 그동안 대만은 중국과의 외교적인 문제로 인해, 경제통합 과정에서 소외됐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아시아에서 북한과 함께 자유무역에서 소외된 유일한 국가인 대만이 이제 싱가포르를 통해 아세안 국가들에 진입, 경제 도약을 꿈꾸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