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코노미플러스] 마크 주커버그 인물탐구

  • 송창섭 기자
  • 입력 : 2011.02.02 07:01 | 수정 : 2011.02.03 05:40

    재산 64억달러… 세계 최연소 부자
    반항아·혁명가 기질 ‘천재 프로그래머’
    아이디어 도용 등 소송 휘말리기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마크 주커버그는 늘 맨발에 슬리퍼를
신기로 유명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마크 주커버그는 늘 맨발에 슬리퍼를 신기로 유명하다.
     페이스북의 강점이자 약점은 회사의 역량이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 1인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주커버그하면 페이스북이고, 페이스북이 바로 주커버그인 셈이다. 학창 시절부터 남달랐다는 주커버그는 이전의 미국 IT기업 경영자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와는 전혀 다른 부류다. 동전의 양면처럼 그를 평가하는 언론의 평가도 극단적이다. ‘혁명가’라는 찬사와 동시에 ‘공상가’, ‘사기꾼’이라는 비난도 그에게 꼬리표처럼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동창생들에게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학창 시절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특집기사가 있었다. 왠지 랩톱(Laptop:노트북)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정답은 화이트보드였다. 2m가 넘는 커다란 화이트보드는 대학시절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많은 천재들이 그랬듯이 주커버그도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기록하기에는 화이트보드 만한 게 없었던 것 같다. 화이트보드는 친구들과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의 절친한 친구였다.

    대학생 주커버그는 전형적인 천재 프로그래머의 모습이다.

    수업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프로그램 코딩(기계 언어로 프로그램을 짜는 행위)으로 보낼 정도로 집중력하나 만큼은 타고 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잠을 자는 시간은 하루 2~3시간이 채 넘지 않았다는 게 학창시절 그를 곁에서 지켜본 친구들의 전언이다. 그리고 그 컴퓨터 옆에는 언제나 빈 맥주병과 음식 포장지가 넘쳐났다.

     공부와 일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전형적인 천재 프로그래머의 모습이다. 대신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은 토론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의 방 하버드대 커크랜드하우스 H33호 거실은 아이비리그 천재들과 괴짜들의 사랑방으로 통했다.

    설립초기 동료였던 션 파커
와 멘토인 마크 앤드리슨. 친
누나이자 마케팅 책임자인
 랜디 주커버그(왼쪽부터).
    설립초기 동료였던 션 파커 와 멘토인 마크 앤드리슨. 친 누나이자 마케팅 책임자인 랜디 주커버그(왼쪽부터).
    여학생 인기투표로 시작된 페이스북

     주커버그가 처음 개발한 프로그램은 코스매치. 코스매치는 다른 사람들의 수업 시간표를 토대로 자신이 들을 수업을 고르게 하는 사이트였다. 과목을 클릭하면 누가 그 수업을 수강하는지 볼 수 있고, 원하는 학생을 선택하면 그 사람이 무슨 수업을 듣는지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하버드대생들은 대외적인 평판에 민감하기 때문에 누가 해당 수업을 듣느냐로 수업의 질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코스매치는 이 같은 하버드대생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코스매치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주커버그는 학교에서 제일 얼굴이 예쁜 여학생을 선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것이 페이스북의 출발이 된 페이스매쉬(Face Mash)다. 2명의 여자 사진을 나란히 보여주고 누가 더 얼굴이 예쁜지를 투표하는 방식이다. 주커버그는 페이스 매쉬에 쓰일 사진들을 ‘페이스북’이라고 부르는 학부 기숙사생들이 만든 인명록에서 해킹을 통해 입수했다. 2003년 11월 2일 그의 노트북에서 시작된 페이스매쉬 서비스는 하루에만 2만3000명이 접속해 그 결과 하버드대 서버가 마비됐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에 실린 장문의 인터뷰 기사 중에 인상적인 사진이 있다. 공장같은 덩그런 공간에 직원들이 다리를 책상에 올리고 일을 하고 그 앞에 주커버그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이 사진은 세계 최고 기업으로 부상하는 페이스북의 기업 문화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통넓은 청바지에 축 늘어진 티셔츠, 여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슬리퍼를 신고 있는 그에게서 글로벌  IT기업의 최고 경영자(CEO)다운 모습은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주커버그는 ‘세계에서 가장 옷을 못입는 사람’으로 뽑혔다. 주커버그는 겨울에도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괴짜다. 세 줄이 그려진 ‘아디다스’슬리퍼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버린 지 오래다. 페이스북 창업 과정을 그린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는    눈덮인 하버드대 교정을 맨발에 슬리퍼 하나만 신고 뛰어다니는 ‘귀찮은 것은 딱 싫은’ 신세대다.

    주커버그는 1984년 5월 14일 뉴욕주 웨스트체스터의 소도시 도브스 페리(Dobbs ferry)에서 치과의사인 아버지와 심리학자인 어머니 사이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에드워드 주커버그는 도브스 페리에서 제일 큰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로 동네에서는 그를 가리켜 ‘무통(無痛)의사 닥터Z’로 불렀다.

     고등학교 시절 주커버그는 공부도 잘하면서 놀 줄도 아는 모범생으로 통했다. 포춘에 따르면 고등학교 시절 주커버그는 수학, 천문학, 물리학은 물론 고대 그리스어 등 고대언어와 같은 인문학과 관련해서 상을 받을 정도로 경력이 화려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국 최상위 사립학교 필립스 엑세터 아카데미에서 펜싱부 선수로 활동했다.

     훗날 천재적인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클 자질은 어려서부터 나타났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실제로 그는 고등학교때 친구와 함께 시냅스(Synapse)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는 사용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분석한 뒤 그가 좋아할 만한 다른 음악을 추천해주는 프로그램인 시냅스를 마이크로소프트에 100만달러를 주고 팔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공짜로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구입의사를 타진한 것은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서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마이크로소프트만의 인재 채용 방식을 기준으로 볼 때 주커버그는 최상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소통만이 살길…차별 없는 세상 꿈꿔

     일부에서는 주커버그를 가리켜 환상에 사로잡힌 경영자라고 부른다. 겉으로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개인의 사생활을 들춰 내고자 하는 ‘관음증 환자’(voyeur)라고 매도하는 비판도 있다. 어찌됐건 페이스북과 주커버그의 신념은 “인터넷상에서라도 제발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다. 정보의 독점은 페이스북에겐 타파해야할 제1의 공격 대상이다. 소통을 통한 평등한 세상이야 말로 페이스북의 기업 철학이자 주커버그의 경영 철학인셈이다. 그는 포춘의 테크담당기자이자 <페이스북이펙트>를 쓴 데이비드커크 패트릭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대학에서 배운게 무엇인가. 결국 사람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시작됐지만 하면 할수록 ‘우리가 뭔가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든다.”

     그래서일까. 커크 패트릭은 주커버그를 가리켜 ‘반 권위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을 향한 정면 승부는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페이스북과 주커버그는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주커버그는 페이스북 본사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플레이스’서비스를 시작한다
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주커버그는 페이스북 본사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플레이스’서비스를 시작한다 고 밝혔다.
    괴짜일수록 좋다…대학중퇴자 우대

     페이스북은 인재를 찾을 때도 좀 유난스럽다. 우선 젊은 세대를 유난히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기성체제를 거부하거나 관습 타파주의자일수록 입사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빌게이츠처럼 대학을 중퇴하는 것을 이 회사에서는 미덕으로 여긴다. 그 역시 하버드대를 2학년 때 그만두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좋은 인재가 학교를 그만두고 회사에 들어온다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때 학비를 대주겠다는 약속을 하기도한다. 그만큼 페이스북은 기인들이 모인 집합소다. 어떤면에서 볼 때 그는 20대의 앳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주커버그의 사무실 벽에는 ‘포산(forsan)’이라는 단어가 걸려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그 단어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라는 장편 서사시에 등장하는 말로 ‘아마도,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이 기쁘게 기억될 것이다(Forsan et haecolim meminisse iuvabit)’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알려졌다. 대화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이제 네가 싸우는 상대가 누군지 알겠지”라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는 것만 봐도 아직까지는 좌충우돌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20대의 모습이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이 말은 브래드피트가 주연한 영화<트로이>에서 주인공 아킬레스가 적인 트로이의 헥토르를 상대로 던지는 대사다. 실제로 그는 고등학교시절 펜싱선수로 활약한 덕분에 그리스 로마시대 검투에 관심이 많다. 그는 종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살이는 펜싱경기와 같다. 세상은 전투를 위한 장이며 가장 이상적인 공격은 상대방이 방심했을 때 공격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낱 대학생들의 호기심에 그칠 뻔했던 페이스북이 오늘날 기업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무료음악 제공 프로그램 냅스터를 개발한 ‘션파커’를 만나고 나서부터다. 그 전까지 페이스북은 주커버그의 상상에 머물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회사 재정도 재무책임자(CFO) 에두와르도 세브린 혼자서 고군분투해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주커버그가 션 파커를 만난 것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는 션 파커에게서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을 통한 자금조달 방법을 비롯해 경영 전반을 배웠고, 그러는 사이 페이스북은 미국의 대표 IT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는 것이 해외 외신들의 전반적인 평가다.

    또 주커버그가 오늘날 주목받는 기업인으로 성장하게 된데는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돈 그레이엄의 역할이 컸다. 일찍부터 페이스북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결심한 돈 그레이엄은 하버드대 신문 <하버드 크림슨>에 실린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을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 개발에 적극 참고하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주커버그의 열성팬이다.
    그레이엄의 경영 철학은 주커버그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때때로 주커버그를 만나 1970년 워렌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의 지분참여로 워싱턴포스트가 세계적인 글로벌 미디어로 성장한 것을 예로 들면서 ‘소유’와 ‘경영’의 구분이 왜 중요한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결과 주커버그는 수많은 기업들의 인수·합병 제의를 과감하게 뿌리치고 있다. 그는 “많은 벤처투자자들이 우리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실리콘밸리식 게임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면서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달랐다. 이 회사가 장기적인 전략과 ‘워싱턴포스트’라는 브랜드를 소중히 생각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을 보면서 비전의 토대를 만들어 나갔다”고 회고했다. 뿐만 아니라 넷스케이프를 공동 설립한 혁신기업 가마크앤 드리슨도 이따금씩 주커버그를 만나 경영 전반을 조언해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앤드리슨에 대해 “비굴한 모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완벽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 기업가”라면서 “남들이 뭐라고 하건 별로 신경쓰지 않는 그의 모습에 너무나 매료됐다”고 예찬했다.

    자유수호자 주커버그가 요즘 가장 열을 올리는 화두는 ‘기부’다. 북아메리카대륙 북서부지방에 사는 토착인디언의전통 잔치‘포트래치’에서 출발한 페이스북의 기부문화는 서서히 전세계 네티즌의 호응을 얻고 있다.

    실리콘밸리식 기부문화 ‘새 지평’

    “당시 인디언들은 각자 음식이나 선물을 정성껏 준비해오고, 이 자리에서 사람들은 가장 마음에 드는 선물을 골라갖는데 이 때 가장 많은 선물을 베푼 사람이 가장 높은 명예를 얻는다.”

    주커버그는 포트래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에게 기부는 돈이나 물질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만 해당하지 않는다. 그는 남들보다 먼저 앞장서 공익적인 활동을 해 결과적으로 사회가 바뀌었다면 그것 역시 남에게 베푼 기부라고 설명한다. 가령 정부나 기업이 일방적인 규례를 제정해 개인의 행동을 제한한다고 치자. 남이 해주기 보다 자신이 나서서 반대모임을 결성해 결과를 이뤄내는 것, 그것이 주커버그가 설명하는 기부의 의미다.

    최근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미래를 설명해달라는 주변의 요구에 “페이스북은 인터넷과 사회의 선한 세력”이라고 표현했다.

    “많은 사람이 내가 마치 매출이나 수익에 무관심한 것처럼 오해를 하는데 나의 목표는 회사를 만드는 것 이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세상의 변화를 의미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냐가 나와 이 회사(페이스북)의 존재이유다.”

    * 이 기사는 이코노미플러스 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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