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전세대란'] 대학생에게 "전세 8000만원 올려달라"

입력 2011.01.26 02:59

[대학가에 전세난 '불똥']
직장인들, 도심 전세난 피해 비교적 저렴한 대학가 몰려… 대학생들 '월세 폭등' 신음

서울 성북구 종암동 고려대 인근에서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을 내고 자취하던 이재희(26·고려대 미디어학부 4년)씨는 작년 말 집주인으로부터 "월세를 3만원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씨는 '저렴한 원룸 찾기'에 나섰지만 한 달이 다 된 지금까지 자취방을 못 구하고 있다. 학생 신분에 매달 3만원을 더 내는 게 부담스러워 "6000만원짜리 전세로 돌리면 안 되겠느냐?"거나 "보증금을 더 드릴 테니 월세는 제발 올리지 말아달라"고 집주인에게 통사정했지만 그때마다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씨는 "다른 집주인도 만나봤지만 모두 '우리 동네는 월세만 받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집주인들이 담합한 것 같다. 학교에서 멀더라도 제기시장 쪽으로 가서 집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세대란이 벌어지면서 대학가 자취방 월세까지 덩달아 올라 학생들이 방 구하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인근 전봇대에 원룸을 내놓은 전단지가 가득 붙었지만, 월세가 비싸 전단지를 뜯어가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최연진 기자
'전세대란' 불똥이 대학가에 떨어져 학생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고려대 인근 미래부동산 여규숙(50)씨는 "학교 주변은 전세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금리가 이렇게 낮은데 집주인이 전세를 놓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1년 만기 정기예금에 1000만원을 예치해봐야 이자소득이 연 40만원(세금 제외)도 안 되니 집주인들은 월세로 바꾸고 월세도 올려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3월 개강 전까지 집을 구해야 하는 학생들은 갑자기 오른 집값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월세 35만원(보증금 2000만원)의 자취방에 살던 권모(30·연세대 대학원)씨도 이달 초 집주인이 갑자기 월세를 5만원 올려달라고 해 새집을 알아보고 있다. 권씨는 "싸고 좋은 방은 이미 1월 초에 계약이 끝났다"며 "미리 말해줬으면 준비라도 했을 텐데 속상하다"고 말했다.

집주인들은 관리비를 따로 요구하는 방식으로 월세를 올리기도 한다. 고려대 정경대 후문 근처에서 월세 40만원(보증금 500만원)에 사는 김도형(25·고려대 생명과학과 4년)씨는 "최근 집주인이 월세를 안 올리는 대신 관리비 3만원을 따로 요구했다"며 "월세 3만원을 올리나 관리비 3만원을 더 내는 것이나 같은 거 아니냐고 따졌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근처에서 누나와 전세 1억원짜리 아파트에 살던 오모(27·고려대 수학과 4년)씨는 "작년 12월 말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8000만원 올려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전세금을 1년 새 80%나 올려달라는 요구였다. 오씨는 "학생이라 급전이 없다고 하자 주인은 '그럼 전세 1억원을 보증금으로 돌리고 60만원을 월세로 달라'고 하더라"며 "학교에서 멀지만 가격이 맞는 약수동 쪽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각 대학은 기숙사를 증축하고 있지만 기숙사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 부근에 신축 오피스텔이 많이 들어서고 있지만 대학가 오피스텔들은 시내 전세금 폭등을 피해 온 직장인과 신혼부부들이 차지하고 있다. 김도형(25·고려대 생명과학과 4년)씨는 "고학년일수록 기숙사를 얻을 확률이 낮아 이미 포기하고 원룸을 구하고 있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커뮤니티 '성대 사랑'에는 지난 18일 기숙사 합격자 발표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어제 어느 분이 여덟 군데 방을 알아봤는데 고시원만 남았다고 했어요(아이디 777)" "지금 당장 방을 구해야 할 것 같던데, 원룸도 좋은 데는 이미 다 찼더라고요(아이디 나잇값)" 등의 글이 올라 있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자취하는 오신영(24·서울대 불어불문학과 4년)씨는 "이 일대 오피스텔들은 교통이 좋아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사무실, 강남 전세금 폭등을 피해 온 직장인과 신혼부부들이 많이 산다"며 "학생들이 살 만한 곳은 점점 줄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인근 우리부동산 배경희(50)씨는 "전세를 놔봐야 이자 몇푼 못 받기 때문에 건물 소유주들은 집 한 채를 전세 놓는 것보다 거실과 주방을 공용으로 쓰도록 하고 방 단위로 월세 놓는 걸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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