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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日서 본 '한국 나르시시즘'

  • 신정록 도쿄특파원

  • 입력 : 2010.10.08 23:04

    신정록 도쿄특파원
    신정록 도쿄특파원
    일본의 유력 경제주간지 도요게자이(東洋經濟)가 지난 7월 말 무려 38페이지에 걸쳐 한국 경제 특집을 한 일이 있다. 제목은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실력'이었다. 이 주간지가 첫 번째로 거론한 한국 경제의 강점은 '재벌 오너 체제에서 비롯된 스피드 경영'이었다. 이 주간지뿐 아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을 비롯한 일본의 유력 언론들이 거론하는 한국 경제의 강점은 거의 한결같이 대통령제에서 비롯된 강력한 리더십, 정경(政經)일체와 함께 재벌 기업들의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결정이다.

    이런 보도들을 보면서 쓴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불과 1년여 전엔 똑같은 측면을 한국 경제의 최대 약점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섬유소재 업체 도레이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사장은 2009년 3월 도쿄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일본 섬유업체 대부분이 한국을 떠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인의 기질은 '빨리빨리'여서 단기 이익에 매우 집착하고 설비투자 등의 경영 판단도 일본측에서 보면 무모할 정도로 빠르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일본인들의 단견을 지적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하는 것, 이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에 대한 외부의 평가를 보면 이 측면이 잘 드러난다.

    1970~80년대 일본이 잘나가면서 '일등국가 일본(Japan as number one)'이라고 하던 시절에 일본식 종신고용과 가족형 기업경영은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경영기법으로 떠받들어졌다. 1979년 '일등국가 일본'을 쓴 미국 학자 에즈라 보겔은 1986년 포린 어페어즈에 '팍스 니포니카(Pax Niponica)'라는 논문까지 썼다. 당시 글로벌 스탠더드는 일본인 듯했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고 경제가 주저앉자 가족형 기업경영이 그 주범으로 지목됐다. 2000년대 들어 일본 경제가 반짝할 때 다시 '일본의 미덕'이 주목받더니, 금융위기 이후에 '일본화(日本化)'라는 단어는 '망한다'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 대표적인 쇠퇴국가로도 거론된다.

    미국을 대표하는 동아시아 전문가였던 에즈라 보겔이나, 글로벌 기업 도레이의 사카키바라가 지적(知的) 능력이 떨어져서 세상을 잘못 짚었겠는가. 그보다는 세상의 불확실성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한국은 어떤가. 말 그대로 욱일승천이다. 가장 먼저 금융위기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난 국가로 칭송받고 있고, 삼성·현대차·LG는 세계적 브랜드의 반열에 이미 올랐거나 근접하는 중이다. G20 정상회의 개최까지 목전에 두고 있으니, 한국에 대한 세계의 칭송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한국의 교육을 칭찬해도, 우리 교육에 쌓여 있는 그 많은 문제점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가 아무리 한국 경제를 칭찬해도 우리 경제의 문제점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한국을 보면 지금의 한국은 자기애(自己愛)에 빠진 '나르시시즘 공화국' 같다. 선진국 문턱은 이미 지난 듯하고, 일본은 곧 따라잡을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이 과학 분야에서 1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내는 동안 한국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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