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중국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 국제자동차모터쇼 행사장. '그린 과학(綠色科學)'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모터쇼에 BYD와 체리자동차, 상하이차 등 중국 토종자동차 업체들이 GM·도요타·폴크스바겐·혼다 등 글로벌 자동차업체들과 어깨를 견주며 신차 10여종을 내놓았다. 상하이차가 주력으로 내놓은 것은 준중형세단인 '로위 550' 플러그인(plug in) 하이브리드(하이브리드카에 충전 기능을 넣어 단거리는 전기의 힘만으로 달릴 수 있는 차. 전기차 범주에 속함)였다. BYD도 내년부터 중국 시장에 판매할 순수 전기차인 'E6'를 전시했다. 이 모터쇼에서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선보인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는 모두 6가지 모델.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신차 개발이 차세대 친환경차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주일 뒤인 지난달 30일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의 BYD 생산공장. BYD가 자체 기술로 개발한 전기버스 'K9' 출시 행사를 가졌다. 왕촨푸(王傳福) BYD 회장은 단상에 올라 "오늘 창사시 정부와 전기버스 1000대 납품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현실이 된 중국 전기차 시장

중국에서 전기차 시장은 '미래의 시장'이 아니라 '현재의 시장'이다. 베이징·상하이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 도시에서도 전기버스가 연간 1000~2000대씩 늘어나고 있다. BYD가 만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승용차인 F3DM는 지난해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다. 내년부터는 순수 전기 승용차도 시장에 나온다. 중국 업체들이 2012년까지 출시하겠다고 밝힌 친환경차는 모두 25가지 차종. 순수 전기차가 13종이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가 2종, 하이브리드차가 10종이다.

한국 자동차업체가 2012년까지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전기차는 2종뿐. 하지만 이 2종류도 모두 관공서에 납품하는 2000여대가 전부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2013년에야 판매한다. 차세대 자동차시장에서 중국은 이미 한국에 앞서 있다.

중국은 내연기관 자동차(휘발유·경유 등을 연료로 삼는 엔진 자동차)로는 현재의 자동차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보고, 아예 전기차로 판을 바꿔 자동차산업의 미래 패권(覇權)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런 시도는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2009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으로 성장한 엄청난 내수 시장이 있고, 전기차 등 친환경차에 집중적인 지원을 퍼붓는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8월 '16개 국유기업을 연합해 차세대 전기차 개발에 나서고, 2020년까지 1000억위안(약 17조원)을 투자한다'는 친환경차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이 되면 한 해에 친환경차가 500만대 정도 보급되도록 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친환경차를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최대 6만위안(약 1000만원)을 지원해 준다. 또 매년 10개 도시를 선정해 각 도시에 연간 1000대씩 전기버스를 공급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특히 내연기관 자동차에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전기차 관련 기술 확보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친환경차 발전계획에 따르면 외국계 기업이 중국 내에서 전기차나 전기차 부품을 생산하려면 반드시 중국 토종업체와 합작기업을 세워야 하며, 중국쪽이 51% 지배지분을 갖도록 했다. 이럴 경우 관련 기술은 중국업체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횡포'에 가까운 원칙이지만,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야 한다.

일본 "기술로 끝까지 살아남는다"

일본은 현재도 세계 자동차시장의 강자(强者)이지만, 미래 자동차시장에 대한 대비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1997년 세계 최초로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를 내놓았고, 미쓰비시 역시 올해 세계 최초로 전기차 '아이미브'를 판매했다. 닛산은 2015년까지 50만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능력을 갖추겠다고 선언했다.

차세대 친환경차 개발·시판에서 선두로 나선 일본은 미리 확보한 특허와 표준을 무기로 후발국들의 진입을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 친환경차 특허에서 일본은 한국에 압도적이다. 1995~2006년 일본의 도요타·혼다·닛산·히타치·도시바 등 5개 업체가 한중일 3국에 출원한 친환경차 관련 특허는 8500여개. 현대차(292개)의 30배에 달한다.

한국은 내연기관 자동차시대의 모범생이었다. 2차 대전 이후 자동차산업을 시작한 후발 개발도상국 가운데 유일하게 독자기술로 자체 승용차 모델 개발에 성공했고, 2005년 이후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가로 올라섰다. 짧은 기간에 이룩한 엄청난 약진이다. 하지만 현재의 성공이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 자동차업체들은 전기차 등 차세대 친환경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이른 시일 내에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아직도 내연기관 자동차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프랑스 파리모터쇼 전시장. 르노 카를로스 곤 회장은 3종의 전기차 모델을 공개하며 "내년부터 각각 2만대 규모로 시판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파리모터쇼에 출시된 자동차를 본 마이클 로비넷(Robinet) CSM월드와이드 글로벌 자동차 예측 담당 부사장은 "전기차 시대가 전문가나 일반 소비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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