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EU의 잇따른 대(對)이란 경제 제재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이광우 선임연구원은 11일 "이란에 대한 미국과 EU의 경제 제재가 예상보다 강할 경우, 중동지역에 정치 불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렇게 되면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선을 돌파해 급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이달석 선임연구위원은 "이란의 원유 수출이 중단될 경우, 다른 산유국들이 증산에 나선다 하더라도 최소 1~2개월은 걸리기 때문에 일시적인 유가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배럴당 70달러대 초반에 머무르던 국제유가(두바이유)는 이달 들어 70달러대 후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런 상승세에 '이란 리스크'가 불을 댕길 수도 있다는 우려다.

현재 이란이 하루 동안 생산하는 원유의 양은 약 400만 배럴.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5%를 차지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2위 산유국이다. 만약 미국이 이란의 석유 수출을 금지하거나, 이란 스스로 석유 공급을 중단할 경우 국제 유가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이란에서 수입한 원유는 8140만 배럴로 전체 수입물량의 9.8%를 차지한다. 중동산 비중도 80%에 달한다. 만약 이란에서 원유를 수입할 수 없다면 당장 현물시장에서 원유를 사와야 한다.

통상 수입국과 2~3년씩 장기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아, 곧바로 대체 수입국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이란의 원유 수출이 중단될 경우, 일본도 현물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2배 정도 많은 원유를 이란에서 수입한다. 이렇게 될 경우 현물시장의 원유가격이 급등하게 된다.

이란이 중동산 원유의 길목인 호르무즈해협 봉쇄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할 경우 1980년대 초 오일쇼크 같은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광우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처럼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원유 공급 자체가 부족할 수도 있다"며 "이럴 경우 산업 생산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제유가 급등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유가가 하반기 우리 경제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하반기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 '고유가 문제'라는 응답이 33.7%로 가장 많았다.

미국이 이란의 석유 수출을 통제하거나 이란이 수출 중단을 선언할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주장도 많다.

구자권 한국석유공사 해외석유동향팀장은 "미국도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 만큼, 최소한 이란의 원유 수출은 제재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일시적으로 유가가 상승할 수는 있겠지만, 하반기에는 배럴당 80달러대에서 오르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