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中東외교] 정부, 멜라트은행(이란 2위 은행) 조사… 美에 "무기外 일반송금은 허용" 요청할 듯

입력 2010.08.05 03:01

美,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자산동결 요구 파장
이란 관련 대책반 구성 기업피해 줄일 방안 모색
국내 자산동결 규정없어 사실상 지점 폐쇄 의미

미국이란 핵(核)개발에 대한 포괄적인 제재에 나선 가운데, 우리 정부에 이란 멜라트은행(Bank Mellat) 서울지점의 자산(資産) 동결을 요구하고 나서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북한 핵 문제를 짊어진 한국으로서는 핵확산 저지라는 미국의 명분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 이란 수출액은 39억9200만달러에 달한다. 게다가 이란 은행에 대해 금융 제재를 가할 경우 국내 건설업체들의 '달러 박스'인 이란 건설 시장을 포기하는 최악의 사태를 감수해야 할지 몰라 우려하고 있다. 이란은 2005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이란 핵에 대한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찬성표를 던지자 3개월 정도 한국산 수입을 전면 중단한 적이 있다.

일단 정부는 임종룡 기획재정부 차관을 팀장으로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외교통상부 등이 참여하는 이란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는 한편, 이란과 거래하는 국내 기업들의 피해를 줄일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은 중동 이외에서 유일한 해외지점

2001년에 설립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은 중동 지역 이외에서는 유일한 해외 지점이다. 멜라트은행은 인접국아르메니아에 1개(예레반), 터키에 3개(앙카라, 이스탄불, 이즈미르), 한국(서울)에 1개 등 총 3개국에 5개 해외 지점만 갖고 있다.

서울지점은 우리나라 대기업 20여곳과 중소기업 2000여곳이 거래하고 있다. 서울지점 설치는 한국이 이란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라는 점 외에도 이란이 오랜 교역 상대국인 한국에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금융권 관계자들은 말한다. 서울 강남에 테헤란로가 있는 것처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는 서울로(路)가 있다.

한산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4일 오후 서울 대치동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텅 빈 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이란 제재의 일환으로 우리 정부에 이 지점의 자산 동결을 요구하면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멜라트은행은 이란의 2위 은행으로, 멜리은행, 사데라트은행과 함께 이란의 3대 국책은행 중 하나다. 1980년 10개 은행을 합병해 설립됐다. 이란 정부가 약 24%, 국가 자본으로 구성된 펀드인 사회보장기구가 15.42%의 지분을 갖고 있어 실질적인 정부 지분이 40%에 달한다.

이란 국내에 1905개 지점을 두고 있고 직원은 2만5000여명이다. 총 자산 규모는 2008년 3월 말 기준으로 427억2205만달러(약 49조8780억원)로 세계은행 순위로는 324위다. 지점은 설치하고 있지 않지만 일본,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등 4개국에서는 현지 은행들과 예치환거래은행(일종의 외환거래 제휴) 계약을 맺고 있다.

자산동결=지점 폐쇄

미국의 요구는 자산 동결이지만, 현행 우리나라 은행법에서는 '자산 동결'이라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현행법상 은행에 대한 제재는 은행법과 외환거래법을 위반한 경우 영업정지 명령이나 지점 폐쇄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만약 자산 동결을 한다면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조치인 만큼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자산 동결의 핵심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재산을 국외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조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사용한 자산 동결이라는 단어는 서울 지점을 폐쇄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측의 요구와 무관하다고 설명하지만, 금융감독원은 미국의 요구가 전달된 이후인 지난 6월부터 멜라트은행 지점에 대한 정기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의 깊어가는 고민

일단 지난달 1일 발효된 이란제재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시행 세칙(細則)을 미국이 발표하게 될 오는 10월 1일까지는 상황에 큰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컨대 제재 대상인 '중대한 거래'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등이 10월에 발표될 세칙에서 명확해 질 것이기 때문에 세칙이 발표되면 전반적인 검토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멜라트은행이 3개의 해외 지점을 두고 있는 터키는 미국측의 자산 동결 요구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터키 정부는 미국이 요구하더라도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로서는 서울지점에 대한 제재가 더욱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멜라트은행이 미국의 제재 대상 은행이긴 하지만 무기 등과 관련이 없는 일반 상품 거래의 송금은 허용해줄 것을 미국에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들의 이란 수출 대금이 묶일 경우 지원하는 방안 등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에서 원유 수입과 관련된 거래는 제외할 것으로 보여 우리나라의 원유 수급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로부터 이란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부분은 제재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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