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동두천제2일반산업단지 입구. '미분양 공장용지를 선착순 분양한다'고 적힌 현수막이 장맛비에 젖은 채 걸려 있었다. 이 산업단지(이하 산단)의 크기는 18만6000㎡. 단지 안으로 들어가니 공장은 보이지 않고 풀만 무성하게 자란 대지가 널려 있었다. 한참 들어가 왼쪽을 보니 건물 한 채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이 단지에 입주한 유일한 업체 '신창'의 LED필름 생산공장이었다.
올해 초 준공한 이 산단은 2008년부터 분양을 시작했으나 현재 미분양률이 63%에 이른다. 그나마 땅을 분양받은 업체들도 입주를 계속 미루는 바람에 공구상가, 식당 같은 주변 시설도 덩달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신창의 한 직원은 "공장이 없다 보니 산단 관리가 안 돼 아직 시청에서 지번(地番)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 산단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최용수 시장이 첨단 기업을 유치해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내걸고 총 사업비 579억원을 들여 조성했다. 경기도 산하 공기업인 경기도시공사가 409억원, 동두천시가 170억원을 썼다.
하지만 이웃한 파주, 양주, 연천 등 다른 지자체들도 비슷한 시기에 경쟁적으로 산단을 만들어 '산단 공급 과잉' 현상이 발생하면서 동두천제2일반산업단지는 '풀만 무성한 텅 빈 공단'이 됐다.
동두천시의 경우처럼, 최근 2년간 지자체들이 수요 예측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려 167개의 산단 조성을 추진해 전국적인 미분양 대란(大亂)이 우려되고 있다.
산단은 대부분 토지주택(LH)공사나 지방 도시개발공사가 개발을 맡고 있다. 수백억~수천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산단이 미분양으로 사업자금 회수가 제대로 안 되면 가뜩이나 심각한 부채를 떠안은 지자체와 지방 공기업 재정을 악화시킬 전망이다. 2009년 말 현재 지방 공기업 부채는 25조8000억원에 이르며, 이러한 부채는 국민의 혈세로 메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준공되거나 곧 준공을 앞둔 산단들을 중심으로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내년 준공 예정인 경기도 오산가장2산업단지는 30만㎡를 장기임대용지로 내놨지만 지금까지 1개 업체만 입주를 신청했다. 지난해 분양하려던 전국 총 27㎢ 산업시설용지 중 15㎢만 분양됐다.
더 큰 문제는 산단 미분양 사태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2008년 이후 지자체마다 산단 지정을 남발했다. 당시 지정된 산단 개발이 완료되는 차기 정부 때 심각한 미분양 사태가 발생할 전망이다.
2008년과 2009년 새롭게 지정된 산단은 무려 167곳에 달한다. 이전 6년간 지정된 숫자와 맞먹는다. 면적으로 따지면 서울시 면적의 4분의 1에 가까운 150.4㎢로, 1998~ 2007년 10년간 지정된 면적(126.7㎢)보다도 넓다. 2008년 이후 산단 지정이 급증한 것은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규제 완화 차원에서 지정 절차와 요건을 대폭 완화한 것이 주요 원인이 됐다. 각 지자체가 '경제 살리기' 치적 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개발여건이나 수요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 무분별하게 산단 설립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토부 김성수 사무관은 "산단이 일시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면서 경제가 크게 활성화되지 않는 한 내년 하반기쯤부터는 미분양이 과도하게 쌓일 우려가 있다"면서 "하지만 일반 산단 지정권한이 각 시·도에 있어 '속도조절'을 요청하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