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떡볶이 → topokki

입력 2009.04.18 03:15 | 수정 2009.04.19 14:23

한국인의 간식에서 세계인의 별미로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5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리처드, 배고프지 않니? 뭐 먹으러 갈래?"
“응, 마침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났어. 덕복… 히? 독보키? 토포키(떡볶이) 먹으러 가자.”

3월 24일 오후 4시. 연세어학당에 재학 중인 유학생 리처드(25·뉴질랜드)와 연세대 신유정(22)씨는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신촌 로터리 골목에 있는 ‘소문난 매운떡볶이’ 집으로 향했다.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리처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치즈떡볶이’를 주문했다. 리처드는 “적당히 매운 맛이 매우 좋아요. 치즈, 라면 등을 추가해서 먹으면 또 다른 맛이 나는 것도 재밌어요”라며 떡볶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외국인이 떡볶이를 즐기는 이런 장면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니다. 한국 음식의 대표적 이미지인 매운 맛을 즐기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떡볶이는 매운 맛 위주지만 기본 식재(食材)가 쌀떡이기 때문에 고추의 매운 맛을 보완해주는 매력이 있다. 매운 맛 일변도에서 벗어나 떡볶이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도 외국인 매니아를 늘리는 요소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가격대가 높은 카페에서도 떡볶이를 파는 곳이 적지 않다. 대학생들의 오랜 쉼터로 자리해온 서울의 24시간 카페 ‘민들레 영토’에선 ‘민토떡볶이’가 인기메뉴이며, 대학가의 술집에선 ‘해물떡볶이’가 코스 안주의 필수메뉴로 등장한 지 오래다. 카페에서 토스트와 떡볶이를 동시에 주문하던 이화여대 이진형(22)씨는 “케이크, 토스트 같은 느끼한 음식을 먹다가 떡볶이로 입가심할 때는 역시 우리나라 매운 맛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떡볶이 세계화에 5년간 140억 투자
연구소 만들고 중소기업 기술 지원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떡볶이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자 마침내 정부까지 나서서 떡볶이의 글로벌 푸드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떡볶이의 세계화에 5년간 14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원해 지난 3월 11일 세계 최초로 떡볶이 연구소도 설립됐고 떡볶이 페스티벌도 열렸다. 떡볶이를 명품요리로 만들고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한국쌀가공식품협회가 설립한 떡볶이연구소는 다양한 떡볶이 제품을 개발하고 소스의 다양화와 표준화, 메뉴얼화를 통해 떡볶이가 세계적 웰빙 식품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는다. 관련 중소기업에 대한 컨설팅과 기술지원에 적극 나서고 떡볶이 전문 프랜차이즈 모델 개발과 떡볶이 품질표준화 교육도 담당한다. 아울러 떡볶이 세계화를 위한 전략 차원에서 이야기와 주제가 있는 음식으로 상품화해나가는 등 농림수산식품부가 추진하고 있는 ‘떡볶이 세계화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민간 부문의 힘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제각각이던 떡볶이의 영문 표기도 ‘topokki(토포키)’로 정했다. 떡볶이를 기존 영어표기 원칙대로 적으면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 세계인들이 이를 쉽게 발음할 수 있도록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윤재돈 주무관은 “떡볶이의 영어명 ‘topokki’가 웹스터 등 주요 사전에 오르고 떡볶이가 지구촌 곳곳에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날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떡볶이가 피자, 파스타, 스시, 쌀국수처럼 글로벌 푸드가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푸드아티스트 오정미씨는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떡볶이 세계화라는 시도 자체는 매우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떡볶이가 파스타와 같이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음식이 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 서양인의 경우 떡 자체의 질감에 대한 반감이 강해 이에 대한 다각적 노력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뉴·레시피 표준화가 최대 과제
체계적 홍보 등 장기적 플랜 필요

‘올리브 떡볶이’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GNS델리의 이재훈(32) 사장은 “초밥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요리하기 편하고, 배합식초 등 핵심 소스가 있으며, 재료만 바꾸면 간단한 방법으로 다양한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강점으로 지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원리로 떡볶이는 한국의 다른 대표음식에 비해 떡과 소스의 변화로 다양한 메뉴개발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우리 음식이 일본, 중국, 태국 등 다른 아시아권 음식에 비해 세계화가 뒤져 있는 현실에 대해 연세대 김철 교수는 “한국 음식처럼 많은 정성이 들어가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데도 한국 음식이 세계화에 뒤처진 이유는 메뉴와 레시피의 규격화와 표준화, 그리고 체계적 홍보와 소비자 연구 등이 부족한 탓”이라며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떡볶이 개발을 위한 연구는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진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은 떡 자체의 변화에서도 읽을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떡이 선보이고 있다. 광진식품 품질관리 주임 권오봉씨는 “가늘게 뽑아낸 떡을 급랭시켜 익히지 않고도 먹을 수 있게 만든 떡은 온도 조절이 가능하여 기호에 맞게 조리해 먹을 수 있으며, 떡 가운데 구멍을 낸 떡의 경우 조리 시간이 단축될 뿐만 아니라 유통기한이 길어져 떡 수출에도 상당 부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국인은 떡의 끈적임 싫어해
콩·야채 활용, 다양한 개발을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떡볶이의 문제점은 어떤 게 있을까? 한국 여행 도중 서울 명동거리에서 떡볶이를 먹던 브래드 라빈(27·미국)씨는 “매운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입안에 도는 끈적거리는 느낌이 별로예요”라며 떡볶이 떡 특유의 질감에 대해 아쉬워했다. 신촌 로터리에 즐비한 떡볶이 포장마차에서는 떡볶이 먹는 외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떡볶이 매니아라고 불리는 한양대 교환학생 블레어 키어벨(21·미국)씨는 “한국 특유의 매운 맛보다는 ‘타바스코’ 소스 같은 톡 쏘는 맛의 떡볶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외국인의 기호를 고려한 매운맛이 개발되길 바랐다. 의류사업차 한국에 온 지 2년째지만 여전히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나카이 류타(32·일본)씨는 “한국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음식이 불고기인데, 이 불고기와 떡볶이가 합쳐진 음식을 먹고 싶다”며 퓨전 떡볶이 메뉴를 제안하기도 했다.

떡볶이연구소 이상효 소장은 “실제 떡볶이는 떡과 소스의 결합이기 때문에 매우 단순하다. 쌀 자체는 영양적으로 훌륭하지만 이것이 떡볶이라는 간식으로 요리되는 과정에 있어서는 전체적으로 영양 보급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쌀과 우리나라의 다른 곡류, 콩이나 야채 같은 것들을 적당히 조합해 균형 잡히고 한 끼로 먹어도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 되도록 웰빙 타입의 떡볶이를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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