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차명계좌 비자금설, 풀리지 않는 의문은?

  • 이데일리
    입력 2007.10.29 16:58

    김 변호사, 본인명의계좌 거래내역 확인못했다?
    삼성그룹 재무담당 임원이 차명계좌 만든 이유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29일 삼성 전직 임원의 양심선언 내용을 폭로하면서 수면위로 드러난 삼성그룹 비자금 논란이 '진실공방'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의 양심고백 내용을 대신 발표한 사제단 측은 비자금 관리에 도용된 계좌라며 일부 물증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삼성그룹 측이 '개인적인 거래의 흔적들일 뿐이며 그룹 비자금과는 무관한 계좌'라고 일축하면서 사태는 양측의 진실공방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 본인 명의 계좌의 거래내역을 왜 확인 못했나?

    사제단에 따르면 김 변호사가 비자금 계좌로 주장하는 3개의 은행 계좌는 모두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에서 만들어졌으며 김 변호사의 동의 없이 삼성그룹이 임의로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도 모르는 26억여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이 들어있던 1개의 증권사 계좌는 굿모닝신한증권 고곡지점에서 개설한 것으로 역시 김 변호사의 동의 없이 삼성 측이 만든 계좌라는 주장이다.

    김 변호사 측은 이들 계좌의 거래내역 조회를 요청했으나 보안계좌로 분류되어 계좌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거나 거래내역 조회가 불가능했으며 이는 삼성 측이 모종의 조치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은행에 따르면 보안계좌(시크릿 뱅킹)의 경우 금융거래 보안 차원에서 본인이 계좌개설 지점 창구에서 요청할 경우만 확인이 가능하도록 한 것으로 이 보안계좌 지정 역시 본인이 직접 창구에서 신청을 해야 지정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 본인이 보안계좌(시크릿 뱅킹)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보안계좌 지정이 되지 않으며 본인이 직접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에서 확인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결국 김 변호사의 주장대로라면 우리은행이 삼성의 압력을 받아 김 변호사 본인도 모르게 시크릿 계좌로 등록했으며 김 변호사가 이 사실을 모르고 다른 지점을 통해 계좌를 확인했다는 의미가 된다.

    반면 김 변호사가 삼성그룹 재무담담 임원에게 계좌를 빌려주고 개인적인 돈거래를 한 것이라는 삼성측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김 변호사가 본인이 시크릿 계좌 등록을 하고도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된다.

    어느 쪽 주장이 맞든지 김 변호사가 우리은행 삼성센터 지점을 직접 방문할 경우 해당 계좌들의 모든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가 삼성그룹 본사와 가까운 삼성센터 지점을 직접 방문하는 데 따른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다시 확인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정의구현사제단이 검찰과 삼성에 대응에 따라 추가 폭로를 할 수 있다고 밝힌 대목을 들어 김 변호사가 계좌의 구체적인 거래 내역을 '다음 카드'로 아껴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하고 있다.

    ◇ 삼성과 무관한 인물 돈관리에 재무담당 임원까지 나섰을까

    삼성그룹은 김 변호사가 거론한 계좌들이 삼성의 비자금 계좌가 아니라 현직 삼성 재무담당 임원이 다른 전주(錢主)의 돈을 관리해주기 위해 만든 계좌로 김 변호사도 이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삼성그룹 임원이 별도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엉뚱한 전주의 돈을 관리해줬다는 부분, 즉 금융실명법 위반과 아울러 도덕성의 문제가 남는다.

    과연 삼성에서 재무같은 주요업무를 담당하는 임원이 개인적으로 아는 전주의 돈을 관리해주기 위해 자기 계좌도 아닌, 검찰 출신 영입인사(김용철 변호사)의 협조하에 차명계좌를 만들어서까지 남의 돈 관리를 도와줄 이유가 뭐였냐는 의문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때문에 제3의 전주라는 사람이 삼성의 CEO급 고위임원이라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재무담당 임원이 금융실명법 위반이라는 부담까지 짊어지고 차명계좌를 만들 정도면 삼성그룹 수뇌부의 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이에 대해 "전주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다만 김 변호사와 돈 거래를 한 해당 임원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그룹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번 사안의 조사가 마무리되면 별도의 조치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 하필 검사 출신 법무팀장을?

    문제의 계좌가 삼성그룹의 비자금이든, 제3의 인물의 자금이든 하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던 김 변호사의 명의를 빌렸을까 하는 점도 의문이다. 굳이 차명계좌가 필요하다면 '부담없는(?)' 다른 임원의 명의도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김 변호사 측은 삼성그룹이 임원들 명의의 계좌 1000여개를 비자금 관리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김 변호사의 계좌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삼성그룹의 주요임원이기 때문에 차명 대상으로 선택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굳이 금융범죄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특수부 검사출신이며 공채 출신이 아니라 외부 영입케이스인 김 변호사의 명의를 거리낌 없이 쓸만큼 계좌가 필요했을까 하는 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삼성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김 변호사의 경우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어 굳이 삼성그룹에 로열티를 가질 필요가 적은 케이스"라며 "어느쪽 주장이 사실이건 김 변호사 명의의 계좌가 논란이 된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변호사는 최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2004년경 자신 명의 계좌에 삼성전자 주식 수십억원어치가 들어있는 것을 알고 그룹 측에 '빨리 정리를 해달라'고 요청했었다고 증언했다. 이를 사실로 인정한다면 김 변호사도 자신의 명의가 삼성그룹 측에 도용되고 있다는 점을 이미 수년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사실상 묵인하고 있었다는 대목이다.

    특히 김 변호사 측이 제시한 물증 가운데 2006년 이자소득 부분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김 변호사의 2006년 금융소득세 부과 내역을 보면 2006년에 비자금 계좌에 50억원 가량의 돈이 들어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지만 이 시기는 김 변호사가 삼성그룹에서 나가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던 때다. 김 변호사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이미 회사를 떠난 임원의 차명계좌에 거액의 돈을 추가로 입금했다는 점은 삼성그룹 측이 김 변호사의 로열티를 높이 평가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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